'시멘트와 철'의 조각가 문인수 초대전24일 저녁 경복궁 옆 갤러리 인. 청와대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평소 인적이 드문 이곳에 젊은이들 서넛이 갤러리 문앞 계단에 앉아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무언가, 힘든 일을 끝내고 막 숨을 돌리고 있는 모습… ‘고아한’ 갤러리 앞에 세워진 지게차와 크레인 역시 화랑 안에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케했다.
문을 열자 마자 한눈에 들어오는 엄청나게 큰 쇳덩어리. 철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녹슬은 폐선. 길이 4m70, 폭 3m70, 높이 3m30이나 되는 흉칙스럽게 생긴 배가 갤러리 공간에 놓여 있었다.
평소 사람 손이 닿으면 큰일이라도 날듯 깔끔한 갤러리 공간에 조심스럽게 놓이던 예쁜 조각물과는 사뭇 다른 투박하고 거친 작품이다.
“지난해 한일어업협상으로 어민들이 겪었던 분노와 절망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착잡한 심정으로, 그들의 불행과 애환을 작품으로 표현해 보았습니다.” 26일부터 이곳에서 초대전을 갖는 문인수 수원대 교수는 작품 ‘Sailing’을 완성하는데 무려 일곱달 이상 걸렸다고 말했다. 4년 만에 갖는 개인전.
198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집률’(集律)이라는 추상작품으로 조각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래, 줄곧 다른 조각가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시멘트와 철’ 이라는 독특한 재료로, ‘비정형의 세계’를 보여주었던 그가 선보이는 또다른 파격이다.
“인생 여정이라 할까요. 나이가 들수록 세월, 시간 같은 것이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본들’ 허(虛)한 마음 달랠 수 있던가요. 무상한 마음을 실어, 한겹 한겹 배에 세월을 입힌다는 마음으로 철조각을 깎고 붙이고 결합했습니다. ”
“철은 솔직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녹슬어 없어지지요. 시멘트에서는 힘이 느껴지고요. 물과 섞어 혼합했을 때 거푸집을 벗어나려는 힘은 대단해요. 서민적이고 일반적인 힘인 것 같으면서도 표정까지 있습니다.”산업화의 산물인 철과 시멘트. 푸석푸석한 시멘트로 발라 올린 조타실은 근대화로 치달으면서 한국사회가 보여주었던 여러 모순들을 작은 숨결로 전해주고, 남북으로 대치된 분단의 벽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때문일까.
구부러지고 삐져나온 철근, 녹슨 철판, 낡은 시멘트 벽에서는 질박한 미감이 흐른다. 갤러리 공간과는 결코 화음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던 폐선은 곧 관객앞에 익숙하고 안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선다. 작가는 “시멘트와 철판을 덩어리로만 보지 말라”면서 “강인한 힘에서 오는 미감은 미래를 향한 건설적 표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의 표정에는 서민들의 질척한 삶이 담겨있고, 우리의 과거와 미래까지 엿보이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Sailing’외에 철의 속성을 극대화하고 싶어 철을 녹슬게 만들고 갈아보고 색깔까지 입히는 등, 작가가 “온갖 ‘못된 짓’은 다해” 철의 끝은 어디인가 확인해 본 소품 14점도 전시한다. 소품 제목 ‘인터스페이스’가 표현하듯 작품마다 ‘틈’이나 ‘간격’을 두어 보이지 않는 공간에 대한 존재를 드러내보이고 있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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