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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들 통해 본 性풍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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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들 통해 본 性풍속사

입력
2000.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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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순원(43)씨가 연작 장편 ‘순수’(생각의나무 발행)를 묶어냈다. 1968년부터 10년 단위로, 즉 1978년, 1988년, 1998년에 이르기까지 각각 당시 우리 사회의 성(性) 풍속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한 편씩의 소설에 담은 네 작품을 모은 것이다. 성으로 본 한국 현대사회 풍속사라 할 만한 소설이다.이 풍속도에는 시대에 따라 변해온 우리의 누이, 연인, 여동생들의 상처입은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이 그림일 때 그것은 선경후정(先景後情)의 그림이다. 성 풍속이라는 사회현상을 다루면서도 이씨는 그만의 서정적 감각을 잃지 않는다. 한때 지나치게 사회현실을 전면에 내세웠던 소설 경향이 퇴조한 이후, 이번에는 신변잡기 같은 미세한 개인의 이야기들로 채워졌던 최근의 우리 소설에서 이씨의 작품들은 서사와 서정이 드물게 조화된 경우로 꼽힌다.

‘순수’는 현실감을 위해서는 오히려 거꾸로 읽어나가는 것이 좋을듯하다. ‘1998년 겨울, 어린 누이를 위하여’는 IMF시대 한국사회의 초상이다. “제가 만난 아저씨들마다 그랬어요. 술 먹이고 옷 벗기고… 돈 주고요. 그래요. 나도 그러자고 그런 아저씨들을 만났던 거구요.” 원조교제에 희생된 여자아이를 소설의 화자인 소설가 ‘은수’가 만난다.

10년을 거슬러간 1988년은 올림픽을 전후해서 한국사회에 성이 폭발한 시기였다. “사회 전반에 걸쳐 향락산업과 향락문화를 정책적으로 허용하고 또 나아가서 부추기고 조장한” 시대를 작가는 ‘한국사회의 로코코 시대’라 부른다. 이 단편의 주인공 ‘기숙’은 화자의 고향 친구로 로코코 시대의 새로운 귀족들만 드나드는 클럽의 마담이다.

10년 전의 이야기를 다룬 ‘1978년 겨울, 슬픈 직녀’에서 그녀는 일본인의 현지처였다. 섬유공장에서 일하다가 거래처에서 나온 일본인 사업가의 눈에 들었고, 회사 임원들도 부추겨 그녀는 서른 두 살이나 많은 일본인의 후처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간다. 첫번째 이야기 ‘1968년 겨울, 램프 속의 여자’는 아직 산업화가 본격화하기 전 농촌사회의 풍경이다. 집안 일을 거들어주던 누나가 시집가기 전날 밤, 당시 13세였던 화자는 집안 뒷방에서 군대 갔다 휴가 나온 운래 형과 가마꾼들이 마을 사탕공장에서 일하는 한 여자를 윤간하는 것을 목격한다. 30년 뒤 이 운래 형의 딸-그녀가 바로 1998년 원조교제에 희생된 그 여자아이로 설정된 도돌이 형식으로 네 편의 소설은 구성돼 있다.

“성을 통해 시대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했다”고 작가 이씨는 말했다. 처음 그의 이름을 알렸던 ‘압구정동에는 비상구가 없다’ 등의 사회성 짙은 소설과, ‘은비령’ ‘말을 찾아서’ 등 서정적 세계에서 둘 다 성공을 거두었던 이씨는 이번 연작장편에서 두 경향의 조화를 모색한 셈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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