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40)씨가 국내외 주요 작가와 작품에 대한 단상들을 모은 문학수첩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열림원 발행)를 냈다.책 제목은 김종삼 시인의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의 시는 ‘올페는 죽을 때/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후세 사람들이 만든 얘기다//나는 죽어서도/나의 직업은 시가 못된다’로 이어진다.
남씨는 “모든 글쓰기가 결국 가닿는 지점은 허무일 것이다. 글 쓰는 이 가운데 누군들 죽을 때 자기 직업이 시였노라고 자부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마도 나 또한 죽을 때 나의 직업이 시였노라고 하지는 못할 것 같다”라고 부연하며 책을 내는 심정의 일단을 보이고 있다.
여기 실린 글들은 이른바 본격적인 문학 평론은 아니지만 그대로 당대의 한국문학과 문인, 그리고 국내에 알려진 세계적 작가들에 대한 강렬하게 인상적인 소묘이자 해석·비판이다.
무엇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개성적 시인이자 우리 문학에 대한 탁월한 비평활동을 해온 남씨의 ‘글쓰기란 행위’에 대한 고민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원고지 10장 정도 안팎의 짤막한 글들에서 그는 자신의 사유를 눈부신 언어로 풀어놓고 있다. 서정주의 시 ‘자화상’의 첫 구절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기퍼도 오지 않었다’, 이 한 줄을 낳기 위하여 일제 36년의 폭압이 소요됐다고 그는 단언한다.
“오늘날 문학의 죽음을 알리는 선지자의 발 앞에는 시(詩)의 시신이 담긴 검은 관이 놓여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우리 시의 성취를 보여주는 뛰어난 시인들의 시세계를 안내하고, ‘타락한 시대의 초상화’이지만 그래도 읽어내야 할 우리 시대의 소설들을 지적인 언어로 분석하고 있다. 그 자체로 훌륭한 에세이로 읽어도 손색없는 글들이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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