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부산지검에 배임 혐의로 긴급체포된 A(59)씨.그는 조사과정에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탓에 기소될 때까지 20여일간 거의 매일 검찰청으로 소환됐다. A씨의 변호인인 B변호사는 체포 직후부터 끊임없이 검찰에 A씨 접견을 요청했다. 근거는 ‘변호인은 신체구속을 당한 피고인 또는 피의자와 접견하고 서류 또는 물건을 수수할 수 있으며 의사의 진료를 받도록 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제34조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B변호사는 기소 전날인 토요일에야 A씨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구치소에 수감된 A씨는 매일 오전 9시부터 검찰청으로 불려가 늦으면 다음날 새벽 2시, 일러야 당일 밤 11시가 돼서야 구치소로 돌아왔다. 검찰에서는 “소환조사중이니 필요하면 청사내 구치감에서 접견하라”고 했지만 분위기나 시간상 접견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런 일이 왜 ‘상식’으로 통할까.
법조인들은 변호인 접견권으로 대표되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10월 법무부 국정감사에서도 검찰이 기소 후까지 피고인을 100∼200여회나 소환한 사례들은 사실상 변호인 접견을 막는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검찰측은 “혐의사실이 복잡한 피의자들에 대한 추가조사와 잦은 진술번복을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불렀을 뿐 의도적인 방어권 제한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이같은 설명을 일축한다.
판사 출신인 H변호사는 “단순잡범의 경우 변호인 접견은 수월하지만 피의자가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는 사건이라면 기소 전까지 변호인 접견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H변호사도 “무죄를 다투는 사건의 절반 정도는 피의자를 접견하지 못한다”며 “인권침해에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있을 지도 모를 영업상의 불이익을 생각하면 주저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수사기관이 명시적으로 변호인 접견을 제한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1990년 대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수사상 목적’을 이유로 한 잦은 소환에 따른 간접적인 접견거부에는 뾰족한 방어방법이 없다. 따라서 법조계에서는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변호인 접견 취지에 맞게 대검찰청 예규 등 법규를 보완·정비하고 수사기관이 피의자나 피고인을 형사공판의 대등한 당사자로 대우하는 의식전환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