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의 아이들] 日 대안학교 새교육모델 가능성아사히(朝日)신문 3월27일자 조간에 효고(兵庫)에서 치바(千葉)현 중학교로 전학한 야스노리(15)의 애처로운 사연이 소개됐다.
야스노리는 전 학교에서 부회장을 맡고 성적도 좋았지만 새 학교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4일 정도 등교한 후 학교에 가지 않았다. 별다른 이유가 없었고, 본인 스스로도 까닭을 몰랐다. 마침내 정신병동환자가 됐지만 부모가 학교가지 않는 것을 승인한 뒤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도 등교거부 이유가 잘 정리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가지는 알 수 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 순간, 부모도 선생도 다른 생물로 보는 것같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등교거부가 그렇게 나쁜 일인지, 학교가는 일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하면 안 되는 것인지”그는 반문한다.
요즘 학교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 우리나라를 비롯 세계 각 나라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중교육이 일반화한 오늘날 성장기 아이들의 등교 는 마치‘신앙’처럼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그래서 학교를 가면 정상이고, 안 가면 비정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를 탈출하려는 아이들은 갈수록 늘어난다. 성적에 따라 서열화해서 사람을 차별하는 집단에서 떠나려는 시도이고, 입시위주의 비인간적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또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과 억압질서에 대한 반항이기도 하다.
학교에 안 가는 이유는 다양하다. 학교만 생각하면 머리나 배가 아파지는등 몸이 거부하는 아이가 있다. 교내폭력과 이지메가 원인이기도 하고, 학벌위주의 사회가 만든 입시교육이 문제이기도 하다. 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 자기 속으로 숨으려는 아이도 있고, 좋아하는 것만 배우려는 아이도 있다. 이들에게 안식은 무엇보다 앞서는 가치이다.
3월 17일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에 있는‘도쿄슈레’를 찾아 갔다. 슈레(shure·정신을 자유롭게 쓰는 곳이라는 그리스어)는 서울 영등포의 청소년 직업체험공간인‘하자센터’보다 시설이 좋아 보이지 않았으나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넓은 공간 한 쪽에서 열다섯살의 남학생은 피아노를 쳤고, 여섯살된 사내아이 둘은 레슬링을 했다. 그 옆에서 낮잠자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책들이 꽂힌 책장 앞에서 여학생 둘은 책을 읽었다.
인터넷 홈페이지(shure.or.jp) 운영자이기도 한 이 학교 스태프(교사를 부르는 말) 오카자키 데츠오(岡崎徹夫·50)씨가 우리를 맞았다.
“올해 창립 15주년이 됩니다. 슈레는 도쿄에 세 곳에 있는데 이 건물은 이지메로 자살한 사건에 충격을 받아 한 시민이 기증한 것이지요. 여기는 등하교가 자유롭지요. 모든 걸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결정합니다. 그동안 부등교(不登校)에 대한 사회인의 생각을 많이 바꿔 놓았습니다. 정규학교가 아닌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나가는 것과 사회에 적응력을 갖는 과정을 보여주었지요.”
오카자키씨에게 물었다.“대안학교 학생들은 또래아이들과 어울려 공동체의식을 기르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그건 동년배를 포함 주변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어 사회성을 기르는 것 아닙니까? 대안학교는 그 점에서 환경이 낫지요. 자기와 비슷한 아이들과 어울리고 대안학교끼리 자주 교류해서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있습니다.”
“대안학교 출신들이 대학을 가지 않아 직장생활에 지장이 있지 않겠는가?”“예전엔 직업으로 보지 않던 일자리가 요새는 많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면 만화를 그리고, 사진찍기를 잘하면 사진가가 되어 생활해 나가지요. 옷입는 데 관심이 많으면 연예인의 옷 코디네이터가 되어 활동합니다. 대안학교 스태프도 새로운 직업 아닌가요?”
일본 문부성에 따르면, 1999년도에 30일 이상 결석한 초중학생은 약 12만8,000명이었다. 97년의 10만9,000명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일본에는 학교 복귀가 목표인 적응 지도교실 외에 또 하나의 배움의 장소인 민간운영의 프리스페이스, 프리스쿨, 서포트교 등이 있다. 이런 배움의 장소는 1980년대 전반부터 급증해서 전국에 약 900개의 시설이 설치됐다.
한국에는 학교가지 않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교육부의 통계를 보면 작년에 70일 이상 무단결석한 중고생이 6만에 달했다. 그러나 대안교육 관계자들은 10만명은 되지 않을까 추정한다.
미국에는 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150만명이나 된다. 공립학교에서 좌절한 저소득층 자녀를 보내는 제3의 교육제도인 차터스쿨(Charter School)도 전국에 1,200여 곳이나 있다.
일본의 부등교사례를 기획취재한 아사히신문 사회부 우지오카 (氏岡眞弓 ·39)기자는“제도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가정이 문제인가, 학교가 문제인가” 반문하고 “독자의견은 가정의 잘못을 조금 더 지적한다. 그러나 학생들을 억압하는 것은 양자가 같았다”고 말한다.
“사회가 급변해 지역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학교의 교육실험은 가정 학교 정부 모두가 진지하게 지켜보아야 하고, 21세기 새로운 교육모델을 찾는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 이미 새로운 모델이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중이다.”
도쿄=최성자 편집위원
sjchoi@hk.co.kr
■대안학교, 전인교육에 전념
대안학교는 학생들을 교과수업으로 얽매지 않는다. 입시 위주로 강요하는 공부를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즐겁게 현장체험 학습을 하고, 다양한 특성화 교과공부에 참여한다.
한국의 대안학교들은 제도학교와 경계선이 모호하다. 또 공동체 자치학교도 있고, 교육부 인가를 받은 정규학교도 있으며 모두 삶과 배움을 하나로 보아 전인교육에 열심이다.
기존 학교교육에 비하면 발상이 전환된 파격적 학교들이다. 종교 재단에서 운영하거나 대체로 농촌에 자리잡고 기숙사를 운영하며, 오전에 일반 교과공부를 하고 오후에 자유로운 특성화 교육을 받는다. 수업료는 월 16-25만원 정도이고, 기숙사비는 계절마다 차이가 나는데 대개 월 20-40만원 정도이다.
이와 함께 특정 과목을 전문으로 교육하는 전문학교가 있다. 자동차, 정보, 조리 등을 배우는데 학생들의 자부심은 높고 지망생도 많으며, 교육부에서도 장려를 하고 있다. 그리고 계절학교와 방과후 문을 여는 학교, 또 주말학교도 있다.
올해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세계 각국의 대안학교들과 단체들 그리고 개인이 모이는 만남의 장인 제8회 아이덱(IDEC)세계프리스쿨 대회가 도쿄에서 열린다.
도쿄슈레 주관으로 7월 9-15일 올림픽기념청소년종합센터에서 열리는 IDEC(International Democratic Education Conference)은‘프리스쿨에서의 배움’‘홈스쿨링의 실제 ’주제의 세미나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돼 있다.
대안교육전문지‘민들레’(http://user.chollian.net/∼mindle98) 에서 아이덱 참가및 대안학교 문의를 받는다. 02-322-1603
■"학교가 변해야 산다"
최근 청소년상담실에는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들과 이로 인해 고민하는 부모들의 상담요구가 늘고 있다.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들을 상담해 보면 이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학교에서의 적응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사나 또래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학교생활에서의 실패경험은 이들을 학교 밖으로 나가게 한다. 이들 청소년은 방향을 상실하고 떠도는 부평초청소년이 되거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분노하는 청소년들이 된다.
부평초청소년은 자신들이 왜 학교를 다녀야 하고 왜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지를 생각조차 하기 싫어한다. 그저 그들은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날 뿐이다. 행동도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다. 분노하는 청소년들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지닌채 세상의 권위에 무모한 반항을 한다.
또 다른 청소년들은 학교 밖에서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학교를 떠나려고 하는 아이들이다. 과거의 학교는 가정과 사회에서 제공할 수 없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학교에서의 낙오는 세상으로부터의 낙오였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는 다르다.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는 지식과 경험에 한계를 느낀다. 학교는 이들에게 너무도 답답하고 지루한 곳이다. 이들은 학교가 제공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얻기 위해 학교를 떠난다. 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준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극소수이지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들도 있다.
청소년들의 모습이야 어떻든 이들을 학교 밖으로 내모는 것은 좀처럼 변할 줄 모르는 학교의 교육환경이다. 다양한 가치가 병존하는 사회에서 이미 변해 버린 청소년들의 요구를 획일적인 학교가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좌절을 너무도 많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학교가 잘못됐다고 비난하면서 아이들에게는 무조건 학교를 다닐 것을 강요한다. 잘못된 학교에라도 무조건 다녀야 한다는 모순된 요구는 청소년들을 더욱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이제라도 우리는 청소년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으면서, 청소년들이 따라야 할 가치규범이나 행동양식을 요구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기관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미래는 방향 없는 혼란만을 초래할 것이다.
구본용/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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