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만남/김근태 국회의원-손학규 당선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만남/김근태 국회의원-손학규 당선자

입력
2000.04.22 00:00
0 0

지난 13일 막을 내린 제16대 총선은 우리 정치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386세대로 대표되는 참신한 젊은 세대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거 원내진입에 성공한 정치권의 물갈이가 새로운 희망이라면, 여야의 영호남 석권에서 나타난 지역주의 심화현상은 또 한번의 좌절이었다. 이런 과도기적 혼돈속에서 선진정치를 향한 일보전진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민주당과 한나라당내 ‘차세대 그룹’ 두 사람에게 들어보았다._이번 총선의 의미를 말씀해 주십시오.

김근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반영된 선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갈등의 정치와 파당에서 벗어나 토론을 통해 안정적 정치를 펴달라는 요망이었습니다. 어떤 정당도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함으로써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불가피해 졌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한계도 있었습니다.

정치혐오로 인한 투표율의 저하가 그것입니다. 이를 ‘선진국현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을 제외한 OECD(경제개발 협력기구) 회원국의 평균 투표율은 80%에 달합니다. 노골화한 지역주의도 숙제로 남았습니다.

손학규= 새로운 정치가 펼쳐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선거였다고 봅니다. 젊은 세대가 눈에 띄게 약진해 정치주역이 바뀌고 있고, 시민단체의 정치참여도 본격화했습니다. 양당구도로의 재편도 의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금권·관권선거의 폐습이 전보다 더 기승을 부린 것은 유감입니다.

김근태= 금권 관권선거라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과거 선거에 비해서는 통·반장의 선거개입이 사라지는 등 현저히 개선됐다고 봅니다. 공명선거를 위해서는 선관위의 권한과 역할이 증대돼야 합니다. 심판자의 발언권을 높여 게임의 공정성을 확보하자는 것이지요. 16대 국회에서는 이를 골자로 한 정치관계법이 반드시 통과돼야 합니다.

손학규= 15대 총선때는 당시 대통령이 말로라도 공명선거를 강조했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이 당의 필승과 정국안정을 외치고 나섰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여당이나 공무원들에게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사고방식을 만연시켰습니다.

_여야의 영호남 석권에서 나타난 지역감정의 심화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김근태= 지역주의는 정치발전은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에도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이의 완화를 위해서는 우선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 경제 사회 문화 등 지역내 각 분야에 대한 재량권을 늘려야 합니다.

예컨대 지방경찰제를 도입하고 조세체계를 사정에 맞게 바꾸며 단체장의 인사권을 확대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단체장이 책임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할 때 중앙권력과 정치에 대한 지역주민의 집착도 이완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1인2표제 선거제도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면 특정 정당의 지역 싹쓸이도 피할 수 있습니다. 또 영호남의 경우 지역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시민운동 등 자구노력이 병행돼야 합니다.

손학규= 지방자치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나라당의 영남석권은 지역정서 뿐 아니라 정권에 대한 심판 성격도 강합니다. 그리고 어느 나라든 특정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는 정당은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을 일방적으로 지역감정 때문이라고 몰아붙여서는 곤란합니다.

공평한 인사와 균형있는 지역개발 정책을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1인2표제에 대해서는 당론과는 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일부 지역에서 취약한 정당이 그 곳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일리있는 방안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영남과 호남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얻은 득표율에 비추어 여당에만 유리한 제도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양당체제 형성에 따른 여야간 극한대결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손학규= 그런 문제는 국회가 행정부의 시녀 또는 대권장악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이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독자성을 갖고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해소됩니다. 당리당략을 떠나 여야가 사안별로 협조하고 386세대 당선자들이 주장한대로 자유투표(크로스 보팅)관행이 정착돼야 합니다. 또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직도 의원들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선출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김근태= 여야 모두 과반수를 넘지 못해 타협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미국증시 대폭락에 이은 우리 주가의 폭락현상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와 세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상황에서 의원들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펴지 못하면 우리나라가 낙후될 수 밖에 없다는 절박감을 가져야 합니다. 당장 남북 정상회담의 진행상황과 성과를 야당에게도 알리기 위해 국회에 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합니다. 또 국회가 정치의 중심에 서기 위한 국회활성화 대책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합니다. 정치적 사활이 걸린 사안을 제외하고는 자유투표제를 제도화하고 법안실명제를 도입을 검토해야 합니다.

_그러려면 당내 민주주의가 선결과제인 것 같은데요.

김근태= 총선에서 후보의 상향식 공천이 시급합니다. 미국과 같은 개방적 예비선거제도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원들 뿐 아니라 책임있는 시민들도 경선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인 지배의 정당구조가 혁파될 수 있는 것입니다.

손학규= 여당의 경우 대통령과 총재를 분리해야 국회가 청와대와 행정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립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정당이 원내중심 체제로 탈바꿈해 원내총무를 중심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과연 총재가 필요한 것인지 재고해야 합니다. 당분간 시행착오와 부작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상향식 공천은 꼭 실현돼야 합니다.

_선거법 개정문제를 비롯한 개혁입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손학규= 여당이 야당 시절 주장한대로 인사청문회의 대상을 확대하고 특별검사의 권한을 늘리는 방향으로 국회법이 개정돼야 합니다. 또 감사원을 국회로 이관함으로써 행정부에 대한 국회의 실질적 감독이 가능해져야 합니다. 선거비용도 지금처럼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규정을 고쳐 쓸 것은 쓰면서 국민을 매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실화가 필요합니다.

김근태= 우선 부정부패 방지법을 하루속히 통과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무소속과 원외 후보에게 불리하게 돼 있는 선거운동 관련규정도 손질이 필요합니다. 그들에게도 자신을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합니다. 법정 선거비용도 선거운동 기간 중 비용과 정당활동비 모두를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관련조항을 개정하고 하나의 통장에서 출납을 알 수 있게 해야 투명해집니다. 그런데 무급 자원봉사자가 갈수록 줄고 있어 고민도 많습니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을 평가해 주십시오.

손학규= 이제 정치는 정치권의 전유물이 아님을 시민단체는 보여주었습니다. 시민단체의 역할증대는 정치권의 불신을 메워주는 긍정적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혹시 내부의 개별적 이해관계가 공정하지 못하게 반영된 적은 없는 지, 과연 어느 정도의 대표성을 담보했었는 지 냉정히 자성할 때 보다 성숙한 시민운동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김근태= 낙선운동의 공적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공정성과 신뢰성이 충분히 담보됐는가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또 시민운동이 투표율을 높이는 데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고민해야 합니다.

▲손학규 당선자

1947년 경기시흥에서 출생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70년대말까지 한국기독교 사회운동연합 등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 유학,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교수로 재직하던 93년 경기광명보궐선거(14대 국회)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뒤 15대에 다시 당선됐고 신한국당 대변인과 제1정조실장, 보건복지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98년 의원직을 포기하고 경기지사 선거에 나섰다가 낙선한 뒤 이번에 재기했다.

▲김근태 의원

1947년 경기부천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70년대 유신시절부터 80년대 5,6공 정권에 이르기까지 민주화운동 청년연합의장 등을 맡아 수차례 투옥과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재야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95년 자신이 공동대표로 있던 ‘통일시대 국민회의’를 이끌고 민주당에 입당, 기성 정치권에 진입한 뒤 서울도봉갑에서 15대에 이어 재선에 성공했다. 당에서는 초선으로 직선 부총재에 선출되는 잠재력을 보였다.

진행 정리=유성식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