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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고사의 실제/4월 29일자 주제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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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고사의 실제/4월 29일자 주제당선자

입력
2000.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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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이주현

제시문에서 사람을 해방시킨다는 것은 그에게 갈증을 가르쳐주고 오아시스로 통하는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라 하였다. 중량이 없는 돌을 해방시키는 것은 자유롭게 된 돌이라 하더라도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아무 의미가 없다. 이것은 어떤 사물과 사람이더라도 움직이고자 하는 것에 대하여 동기와 목적이 부여되지 않는다면 어떤 자유와 해방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자연 상태의 인간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이성을 발현하여 새로운 문명을 하나씩 만들어 냄으로써 그것에 의해 하나씩 구속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추상화 작업을 통하여 이룩해 낸 정신적 사고 작용도 인간의 삶을 구속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의식주의 공급만으로 가능하지만 문명의 한 축에서 존재하기 위한 인간의 모습은 결국엔 인과 관계로 엮어진 구속이라는 큰 틀 안에 속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은 어디까지의 범위에서 논할 수 있는가. 동기와 목적이 있어야만 자유와 해방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도 또한 자신의 진정함에 대한 자각이 필요할 것이다. 현실 세계엔 비록 존재하지는 않지만 진정한 이상이 내재된 인간이라면 자유와 해방을 절실히 바라게 된다. 그러나 한 인간이 가진 이상이 언제나 현실과 반대되는 것만은 아니며 또한 그것을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이 자유와 해방을 얻는 과정이고 그 과정 속에서 또 다른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이 인간이 존재하는데에 반드시 적합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결국엔 인간이 좀더 이상적이고 발전된 문명 속에서 존재하기 위한 것이다. 이상을 가지지 않고 자유를 추구하지 않는 삶은 인간이 이룩해 놓은 문명의 축에 매달려서 단지 살아가고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수 1

양준명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자유를 얻기 위해 수많은 투쟁을 해왔다. 봉건 사회에 반발하여 진정한 시민정신을 보여준 프랑스대혁명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이자 끝없이 열망해온 바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산업혁명 이후의 기계문명과 그로 인해 나타난 비인간화 현상으로 인해 인간의 주체성마저 상실하게 될 위기에 닥쳐있다. 그럼 이러한 시대에 인간의 자유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사르트르는 인간을 대자존재(對自存在)라고 불렀다. 이말은‘존재’그 자체가 중요시되는 대상을 말하는 것으로 ‘사용하기 위해’인간이 의도적으로 창조된 일반 사물과는 구별되는 지칭어이다. 즉,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말에는 인간에게는 본질 대신에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은 이 자유로 인해 매 인생의 순간마다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인간은 다른 사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만의 독자적인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생텍쥐페리의 ‘전투조종사’에서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로 가는 길을 일러주는 것은 진정한 자유나 해방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누군가가 정해준 길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개개인의 주체성 확립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금의 사회는 인간이 기술에 지배되는 비인간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주체성이 없는 인간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창조해낼 수가 없다.

이런 면에서 주체성 확립이 자신의 자유와 해방 추구의 첫걸음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함께 갖추어야 할 것이 바로 뚜렷한 지향성이다. 앞에서 인간은 매순간마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언급했다. 이 말은 확고한 지향성이 있어야 자신의 인생을 자기의 의지대로 개척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된다.

자유와 해방, 확실히 이것은 인간이 오랜 세월 동안 염원하고, 지금까지 부르짖어 온 절대 불멸의 가치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가치도 인간 개개인의 노력과 의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진정한 자유나 해방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수2

김원희

인간이 참다운 자유를 느낀다는 것은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사회적 억압이나 정신적 고뇌에서 벗어났을 때를 말한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간에 인간이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에 이르는 것을 해방이라 한다. 즉 인간은 구속 또는 억압에 대한 해방을 통하여 진정한 자유에 이르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자유는 인류에 의해 끊임없이 추구되어 온 인간의 기본권 중의 하나로 신성불가침한 것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 속한 우리 현대인들은 자신이 누려야 할 진정한 자유와 해방되어야 할 대상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에게는 이미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현대인에게는 자유로울 권리가 주어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형식적 자유이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 실질적 자유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형식적 자유와 다른 한 차원 높은 실질적 자유를 누려야 하고 이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예로부터 의식주의 해결이라는 문제에 매여 자유롭지 못하였고 의식주의 원만한 해결이 가능한 현대 사회에서는 경쟁, 효율성, 사회제도 등에 매여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인간은 과거와 비교하여 신체적 자유는 얻었으나 끊임없이 유형적 무형적 존재에 구속당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진정한 자유란 정신적인 문제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육체가 형식적 자유를 누리듯이 정신은 실질적 자유를 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참다운 정신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편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흑백논리, 고정관념 또는 문화적 열등감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인간은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참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란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자유가 없는 상태에서의 인간은 이미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참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존재하고 그러기 위해서 정신적 해방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편견은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는 가장 큰 적으로 인간은 그것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려야 한다.

■[논술강평] 출제자 의도 잘파악 논지 짜임새는 부족

이태동

필자가 과거에 본란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급했듯이, 훌륭한 작품은 형식과 내용이 탁월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즉,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좋은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담을 그릇이 잘 만들어지지 못하면 그 빛을 발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형식이란 쉽게 이야기해서 서론·본론·결론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것을 좀 더 정교하게 세분한다면, 서론에서는 도입부, 즉 토픽 센텐스를 잘 쓰는 방법이 있고 본론에서도 논지를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 비교와 대조 또는 은유 등과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또한 결론 부분에서는 자신의 글이 담고 있는 내용과 주장을 종합적이면서도 함축적으로 정리하는 장치를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참신한 언어의 사용에 의한 일종의 “낯설게 하기”를 통하여 독자의 타성적인 습관을 무너뜨려 진부한 사실 속에 숨어 있는 참된 진실을 발견하도록 하는 방법도 훌륭한 논술문을 쓸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수험생들은 출제자가 강평에서 내용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룬다고 해서 형식 문제를 소홀히 다룬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출제자가 내용 문제를 집중적으로 언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것이 학생들에게 형식 문제보다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출제 의도의 기저에는 형식 문제의 중요성도 논리 전개에 필수적이란 것을 어느 정도 전제로 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주에 출제된 “해방과 자유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학생들이 다루기에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해방’과 ‘자유’라는 개념을 일상에서 흔히 비슷한 뜻으로 혼돈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는 ‘해방’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해방’이 곧 ‘자유’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생각하면 ‘해방’은 물리적인 현상이지만 자유는 심리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인간은 해방이란 진공상태에 있을 때 불안하고 무엇을 선택했을 때 비로소 자유롭다’고 말했듯이, 실존적인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비록 무위(無爲)로 끝난다 하더라도 어떠한 목표를 갖고 그것을 성취하려고 노력할 때 역설적으로 그것의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아무런 목적이 없이 ‘해방’된 진공상태에서 그러한 ‘자유’는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 누구 못지 않게 치열한 삶을 살았던 생텍쥐페리가 인용문에 소개된 것과 같은 내용의 말을 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다.

이번 주에는 상당수의 응모작들이 출제자의 의도는 물론 제시문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학생들이 문제를 정확히 읽으려고 하기보다 다른 현상과 지식에 의해 억압을 받아 편견에 지배되기 때문인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우수작으로 뽑은 이주현(명덕외고)의 글은 응모작들 가운데 제시문의 내용과 출제자의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본론의 후반부에서 실존적 차원에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다른 글들에 비해 상당히 돋보인다. 그러나 도입부가 매끄럽지 못하고 본론 부분에서 논지의 초점을 흔들리게 만든 것, 그리고 결론 부분의 끝맺는 말이 주제와 정확히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우수 1로 뽑은 양준명(익산 원광고)의 글 역시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최우수작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글의 내용이 구체성을 잃고 너무나 추상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이러한 현상은 문학과 철학을 구별하지 못한 결과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보여지는데, 철학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반면 문학은 구체적인 현실을 형상화한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우수 2로 뽑은 김원희(명덕외고)의 글은 구성에 있어서 위의 두 편의 글보다 우수하다. 그러나 내용 면에 있어서 논지를 일관되게 논의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일탈해서 문제를 단순화시키는 약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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