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때 사고, 비쌀 때 팔아야 한다.’주식에나 적용되는 얘기 같지만 경주마도 예외는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세계경마계를 휩쓴 ‘시가’라는 경주마가 대표적인 경우로 꼽힌다. 초일류 경주마로 당대를 주름잡은 시가는 태어났을 때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각광받는 혈통의 말들로부터 태어난 경주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격도 쌌다. 미국에서 뛰지도 못하고 유럽으로 헐값에 팔려 나가 몇몇 경주에 출전했는데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되팔려 온뒤 시가는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경주마로서는 비교적 늦깎이라고 할 수 있는 4세를 넘어서 출전한 경마대회에서 우승하더니 연승을 이어갔다.
급기야 대상경주에서만 10연승의 놀라운 기록도 세웠다. 95년에는 당대 최고 상금의 대상경주로 ‘경마의 올림픽’격인 브리더스 컵 우승컵도 거머쥐었다.
다음해 이 대회에서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상위권 성적에 그친 시가는 경주마로서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판단에서 씨숫말인 종마로 역할을 전환했다. 이때 일본의 한 투자자가 나섰다. 3,000만달러(약 330억원)이상을 줄테니 팔라는 제안이었다.
시가의 마주는 고민끝에 제안을 거절했다. 더 비싸게 팔든가 자신이 종마로 활용해 돈을 벌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가가 뿌린 씨앗은 도대체 여물지를 않았다. 정밀검사를 해보니 무정자증으로 판명난 것.
종마의 역할을 못다한 시가는 지금 미국 켄터키주의 경마공원 한 구석에서 관광객들을 맞이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젊었을 때 거둔 명망에 비하면 쓸쓸하기 그지없는 여생을 보내는 셈이다. 비싼 값에 팔 수 있었던 시가의 마주는 큰 돈을 놓친 대신 일찍이 가입해 두었던 종마보험으로 손실을 만회한 것으로만 알려져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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