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고용불평등 관행이 다시 고개를 들고있다.결혼 임신 육아 등과 관련, 여성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꾸준히 개선돼 왔으나 최근 1~2년 사이 기업 경영환경 악화와 취업난을 빌미로 불평등 인사관행이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 여성계의 지적이다.
더구나 최근 벤처창업 붐 등을 타고 임시직 및 계약직이 크게 늘면서 대기업에서도 여성사원들에게 불공평한 입·퇴사조건을 강요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A그룹 계열 인터넷서비스업체인 B사는 지난해 말 계약직 여사원을 채용하면서 기혼여성에 대해 ‘2년 안에 임신하지 않는다’, 미혼여성에 대해서는 ‘입사 후 1년 내에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구두계약’을 체결했다. 올 연말께 아기를 가질 예정이라는 C씨(30·여)는 “위법인줄은 알지만 취업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인 D사에서 대리로 일하다 지난해 퇴사한 E씨(29·여)는 임신사실때문에 쫓겨난 경우. “거의 매일 이어지는 ‘윗분’들과의 면담에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다른 여직원들을 생각해서라도 끝까지 버티겠다고 마음먹었다”는 E씨는 “그러나 평소 보호막이 돼준 부장이 ‘네가 나가지 않으면 내가 나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하는데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비단 대기업만이 아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인터넷 관련 업체와 벤처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빈발하고 있다. 서울 강남 테헤란 밸리의 벤처기업인 F사도 올 2월 1년 계약직 신입여사원을 뽑으면서 구두로 ‘결혼과 동시에 퇴사한다’는 확약을 받았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대표 이철순·李喆順)가 운영하는 ‘평등의 전화’에 따르면 결혼과 임신·출산에 따른 퇴직압력과 해고, 비정규직으로의 강제전환 압력 등에 대한 상담이 98년 39건에서 99년 63건으로 늘었고 올 들어서는 1/4분기에만 35건이나 접수되는 등 급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 단체 왕인순(王仁順)사무국장은 “최근에는 기업들이 본인에게 직접 각서를 요구하는 대신 중간 간부사원에게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는 식으로 압력을 행사, 행정관청의 감독에 좀처럼 노출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 노동상담센터 박봉정숙(朴奉貞淑)사무국장도 “특히 현실적으로 저항할 수단이 거의없는 비정규직 여성의 경우는 회사측의 부당한 퇴사강요에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 이은영(李銀榮·법학) 교수도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상 혼인이나 임신·출산을 퇴직사유로 하는 근로계약은 금지돼 있다”며 “구두계약이나 간부사원에 대한 압력 행사 등에 대해서도 처벌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 여성정책과 관계자는 “여성고용조건이 악화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최근 남녀고용평등법 시행령을 각 지방관서에 내려보내 적극적인 계도활동을 펴고있다”고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