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벌개혁 드라이브가 다시 점화됐다.지난 2년간 ‘해체’란 말이 공공연히 나올 만큼 강공일변도로 진행됐던 정부의 대(對)재벌정책은 선거를 앞둔 작년말 이후 ‘소프트웨어 개혁’이 새로운 테마로 부상하면서 다소 느슨해지는 인상을 줬던 것이 사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18일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석상에서 올해를 ‘재벌개혁 완성의 해’로 규정하며 선단식 경영근절을 강도높게 주문함에 따라 정부도 재벌을 향한 채찍의 고삐를 고쳐 잡는 분위기다.
이같은 강성기류의 형성 배경에는 선거결과도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제1당 의석확보 실패로 권력누수와 기득권세력의 반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최대의 ‘개혁기피집단’인 재벌을 풀어놓을 경우 집권 후반기 구조개혁추진은 물론 정치안정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재벌 정책의 공세적 전환은 김대통령이 최근 정치권과 행정부에 대해 ‘임기가 3년이나 남아 있다’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조사는 향후 재벌정책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향후 부당내부거래조사의 역점방향을 금융계열사 분가(계열분리)·분사기업 구조조정본부등 3가지로 압축하고 있다.
구조조정본부에 대한 부당내부거래조사는 황제경영의 심장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벌들이 가장 긴장하는 대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구조조정본부가 본래 취지를 떠나 과거 기획조정실이나 비서실처럼 인사권행사 등 선단식 경영의 사령탑 역할을 수행한다면 계열사의 구조조정본부에 대한 인력파견, 사무실제공, 예산지원 등을 부당내부거래로 규정해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구조조정본부는 지금까지 정부도 접촉창구로서의 ‘필요’에 의해 그 존재를 묵인했던 것이 사실. 한 재계 인사는 “계좌추적권까지 갖고 있는 공정위가 구조조정본부까지 정밀조사한다면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선단식 경영의 ‘자금파이프’인 금융계열사 조사도 건드리는 강도에 따라 재벌체제 자체를 해체시킬 수 있을 만한 강한 화력을 갖고 있다.
전윤철 공정위원장은 “지금은 금융계열사를 통한 계열사간 내부거래 때 지원받은 계열사만 제재했지만 앞으론 금융계열사도 직접 처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정부 고위관계자는 “재벌이 증권 보험 투신 등 계열사를 계속 사금고처럼 악용한다면 결국은 은행처럼 이들도 소유 자체를 금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개별기업별로는 현대그룹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가장 관심거리다. 현재 공정위는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중공업 현대전자 등 주력계열사에 대한 부당내부거래조사를 진행중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번 조사는 현대가 계열분리된 특정기업에 계속 부당지원을 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라며 “최근 인사파동이나 재벌정책 방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번 현대조사에서 처음으로 구조조정본부까지 직접 조사하고 있어 타 재벌그룹엔 앞으로의 재벌정책 수위를 가늠케 하는 ‘묵시적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성철기자s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