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무정부주의자 다룬 '아나키스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무정부주의자 다룬 '아나키스트'

입력
2000.04.21 00:00
0 0

* 홍콩느와르풍 첫 한·중합작영화‘아나키스트’는 실질적인 한·중 합작을 통해 만들어진 첫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또 그간 아무도 밟지 않았던, 그러나 꼭 밟았어야 할 우리 역사 공간의 한 시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영화이다.

1920년대 중국 상하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무정부주의자들. 사상의 거처를 따로 두지 않고, ‘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먹고 싶은 만큼 가져가는’ 순수의 세상을 꿈꾸었던 이들. 그들이 몸담았던 ‘의열단’과 조국은 그들을 버렸다. ‘순수’는 맹독성을 갖고 있기에.

다섯 남자 이야기이다. 조직의 리더로 전략과 전술을 능란히 구사하는 한명곤(김상중), 이상주의자로 목적만큼 수단도 순수해야 한다고 믿는 이근(정준호), 허무주의 지식인 세르게이(장동건), 백정의 아들로 저돌적 행동주의자인 돌석(이범수), 테러리스트 입문자인 관찰자 상구(김용권). 일제시대 한국 지식인과 혁명가들의 고민의 깊이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한 번도 제대로 논의된 적 없이 역사의 이면에 묻혀버린 역사를 이야기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화적으로도 ‘벤치 마킹’할 대상이 없었다.

‘입봉’ 영화로 큰 작품을 쥔 유영식 감독으로선 가볍게 가는 길을 택했다. 다섯남자는 멋진 양복에 와인을 즐기는 스타일리스트였다. 그들은 거사 직전 반드시 한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들의 테러가 얼마나 파급력을 가졌는가, 아나키스트 논리의 허점은. 이런 질문을 피했다. 대신 그들 삶의 희비극을 드러냈다. 조직 자금으로 아편을 한 세르게이는 조직원의 단장의 손에 죽고, ‘씹어서라도’일본인을 죽이겠다던 돌석은 쫓기다 자살하고 만다.

비극만 있던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테러는 게임만큼 멋진 승부의 순간. 그러나 이런 설정은 이 영화의 약점이다. “옥에서 나와 보니 해방이 돼있었다. 일제때 앞잡이가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이 되어 김원봉 단장을 잡아다 고문했고, 단장은 사흘간 통곡하다 38선을 넘었다.” 상구의 내레이션이 이뤄낸 성과는 그러나 잔재미와 홍콩 느와르 분위기에 집착한 연출로 의미가 반감한다. 반면 장동건 정준호의 연기는 좋아졌다. 무엇보다 상투적 장르에 빠진 영화의 소재를 확장하고, 스케일 큰 화면을 보여 주었다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오락성★★★★ 작품성 ★★★. 29일 개봉.

/박은주기자jupe@hk.co.kr

■영화 '아나키스트' 막내 상국역 김인권

연기라고는 대학(동국대 연극영상부 3년 휴학) 워크샵 연극 두편이 고작이었다. 영화는 ‘송어’가 처음이었다. ‘박하사탕’에서 위병소 병장으로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으로 김인권(22)은 배우가 됐다. 얼핏보면 외모가 촌스럽다. 그는 이를 “토속적”이라고 했다.

순수하고 순박하지만, 가슴 속에 뭔가 응어리가 맺혀있는 것 같고, 그것이 터지면 그 울분이 날카롭게 가슴에 파고드는 인물. 그는 한국 영화에서 정우성, 홍경인이 지나가고 빈 10대 후반역의 자리를 채울, 반갑고 필요한 존재가 됐다.

‘아나키스트’의 막내 상구는 전체 줄거리에 양념이나 상황적 도구에 불과한 조연이 아니다. 내레이터로 극을 이끌고, 개성이 뚜렷한 선배들을 관찰하고, 또 그들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그들의 좌절에 슬퍼하고, 자신의 역할부재를 안타까워하는 소년 테러리스트이다. 그는 상구에게서 ‘투명함’을 발견했다.

그 이미지를 그는 어긋난 행동에서 오는 웃음, 꾸밈없는 표정, 중국소녀 밍밍과의 조심스런 풋사랑으로 표현했다. “대사가 적어 연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감정은 좋았다”는 것이 스스로의 평가. 정통극을 해보지 못해 부족한 테크닉과 감정을 그는 철저한 인물분석으로 메웠다.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중에는 이렇게 살다간 분도 있었고, 왜 그들의 삶이 역사에서 지워져야 했는지 상구로 석달동안 살면서 알게 되었죠”

김인권은 하루라도 빨리 영화현장에 뛰어들고 싶어 ‘송어’연출 일을 돕다 배우가 됐다. ‘송어’가 모난돌 연기를 깎아 주면서 카메라와 호흡하는 법을 가르쳤다면, ‘아나키스트’는 연기를 다듬고, 계산하는 첫 걸음을 경험하게 했다.

어릴 때 심형래의 열성팬이었던 그는 대학 ‘쫑 파티용’ 비디오에서도 웃기는 역을 도맡아 했고, 그의 코믹연기 재능은 ‘아나키스트’에서도 비춰졌다. “이미지와 변신을 위해서라도 배우에게는 시나리오 선별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 저 작품 마구 얼굴을 내밀지 않고 성격이 확실한 영화에만 출연하고 싶습니다.”

/이대현기자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