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적으로 축구는 기원전 200년경에 중국에서 시작됐다(舊唐書)는 것이 동서 학자들의 통설이다. 중국의 축구는 우리나라에도 전래돼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신라시대 김유신과 김춘추가 축국(蹴鞠)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도 공을 던지고 차는 스포츠가 있었지만 지금과 유사한 형태의 축구는 중세 영국에서 시작됐다. 전설에 따르면 처음 사용된 공은 영국을 침략한 덴마크인의 두개골이었으며 이 게임은 너무 폭력적이어서 중단됐다.
아무튼 축구는 영국에서 인기가 점점 확산됐는데 군인들이 전쟁보다 축구를 더 좋아하고 경기때마다 부상이 속출, 전투력이 떨어지자 1365년 에드워드 3세가 축구를 금지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300여년전 영국의 축구는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약 3~4마일의 거리에 골대를 세워두고 500여명 정도가 참여하는 집단축구였다. 축구가 열리면 거리 건물의 유리창이 깨지고 부상자, 심지어는 사망자까지 나왔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축구가 시작된 것은 이튼, 웨스터민스터 등 영국의 학교교육이 시작되면서이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나름대로 룰을 정해 모양새를 갖추었고 1857년엔 영국 셰필드에서 첫 축구클럽이 탄생했다.
축구가 급속하게 세계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규칙의 단순성때문이다. 국경과 언어, 종교를 초월해 누구든 할 수 있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점이 100여년만에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전시켰다. 심리적인 이유도 있다.‘찬다’는 것은 어감조차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다.
‘찬다’는 연인들이 절교할 때도 즐겨 쓰는 표현이며 그 행위는 자긍심과 상당한 만족감을 주게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축구경기에는 관중에게도 대리만족감이 작용한다. 20세기 초 서로 많은 전쟁을 했던 중남미국가들의 축구경기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1968년 7월 월드컵예선때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경기장 난투극이 진짜 전쟁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경우도 한·일전에는 선수들은 물론 국민에게 감정이 작용한다. 그것은 35년간의 일제강점과 깊은 연관이 있다. 두 나라는 승패에 따라 때로는 깊은 상처까지 받는다.
축구협회 정몽준회장은 97년 5월 월드컵 유치기념 한·일전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한국과 일본은 과거의 역사를 씻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서로 많이 만나야 하며 가장 좋은 방법은 양국이 축구를 많이 하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공동개최하는 한국과 일본이 26일 오후 7시 잠실주경기장에서 친선경기를 벌인다. 정회장의 말대로 이제는 두 나라가 한·일전을 미래의 공존과 번영의 마음가짐을 되새기는 자리로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유승근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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