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사상의 거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 선생의 초상화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문화재 수집가 이원기씨가 발견해 16일 공개한 다산의 초상화는 유배생활을 겪고 난 후의 노년기 모습을 그린 전신상(全身像)으로 세로 91.5㎝, 가로 53.5㎝의 지본(紙本)이다.그림 좌측에는 ‘정약용선생초상(丁若鏞先生肖像)’이라는 제명이, 오른편에는 ‘실사구시창시(實事求是創始)’ ‘목민경세대성(牧民經世大聖)’이란 글귀가 적혀있다. 낙관이 없기 때문에 화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다산을 존경하는 주변의 화원이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다산 초상화는 현재 문화재위원이며 초상화 분야의 전문가인 맹인재(孟仁在)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이 감정했다.
180여년 전에 그려진 이 초상화 속에서 다산은 동파관(東坡冠)을 쓰고 도포를 입은 평상복 차림으로 정좌해 있다. 안광(眼光)이 빛나는 눈매엔 대학자(大學子)의 지혜가 깃들어 있고, 각진 광대뼈에는 역경을 견딘 지사(志士)의 강단이 녹아 있으며, 평복을 입은 단아한 모습에선 청정한 선비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맹씨는 “초상화 속 다산은 마치 주경야독하는 견실한 산림처사가 잠깐 정좌해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다. 관복(官服)이 아닌 평복 차림의 모습에서 가식없는 그의 인간적 모습을 대하는 것 같아 더욱 반갑다. 역경을 딛고 방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룩한 불멸의 거인답게 그의 초상 역시 그 모든 것을 헤쳐온 대인(大人)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그는 “얼굴의 음영설정과 묘사가 정확할 뿐 아니라 다산의 내면 정신까지 표출하고 있어 매우 의미있는 초상화”라고 덧붙였다.
한국초상대관을 펴낸 이강칠(李康七) 전 육사박물관장과 한국 복식전문가 유희경(柳喜卿) 전 이화여대 교수도 초상화를 감정한 후 설마하던 다산의 초상화가 훼손없이 발견된 것에 경탄했다.
1974년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화백이 다산을 추정해서 그린 초상화가 그동안 다산의 표준 영정으로 지정돼 왔을 뿐, 다산의 초상화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다산 외모에 대한 기록으로 다산 사후에 후손이 편찬한 사암연보에 “다산의 얼굴 모양과 수염이 대부분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다산의 외증조·윤두서자화상은 국보 240호)의 모습을 닮았다. 다산이 항상 말하기를 나의 정신이나 모습 대부분 외가에서 받았다고 했다”는 구절이 있다.
다산 초상화를 보유하고 있는 이원기씨는 그동안 각종 초상화를 수집해오다 지난해 말 우연한 경로로 이 초상화를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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