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170명과 6개 학급, 13명의 선생님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시골의 작은 학교다. 삭막한 빌딩과 아파트 대신 길게 줄기를 뻗는 사과나무와 언덕 위를 한가로이 거니는 젖소들이 우리 학교를 둘러싸고 있다.자연은 어느 사물 하나 소외시키지 않듯 자연 속에 사는 우리들은 ‘왕따’를 모른다. “모두다 좋은 친구들인데, 왜 따돌림을 당해?” 왕따라는 말을 신문과 방송에서 처음 들었을 때 우리의 생각은 이랬다.
얼마전 2학년때 전학왔던 한 친구가 다시 전학을 가게 됐다. 그 아이가 가방을 챙기고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금새 교실은 울음바다가 됐고 옆 반 친구들까지 어느새 그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1년이란 시간동안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그렇게 정을 키워 갔는데…. 그후로 아이들은 매일 그 아이에게 편지를 쓴다. 학교에서 일어난 작은 일까지 궁금해 할 그 친구를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쓴다.
이렇듯 잠시 우리 곁에 머물렀던 친구마저도 우리에겐 소중하다. ‘왕따’가 머물 곳은 우리 학교 어느 곳에도 없다.
사과가 익어 갈 무렵에는 과수원집 친구들은 학생수 만큼의 사과를 학교로 가져온다. 성대한 ‘사과파티’가 열린다. 그리고 꼬마 아이들처럼 운동장에서 긴 줄을 돌리며 함께 줄넘기를 할 때 우린 모두 행복하다.
하지만 가끔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서울 아이들은 극장에서 영화도 보고 가수들 공연도 볼 수 있겠다” “도시 친구들은 학원도 열심히 다닌다던데”“서울에 큰 서점이랑 큰 옷가게가 많다는 데 거기 한번 가보고 싶다” 학원 하나없는 이곳에 사는 우리로서는 몇 군데의 학원을 바삐 다니는 도시의 아이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대형극장 대신 시내버스를 타고 20분을 가야 빌려볼 수있는 비디오에 만족해야 하는 우리는 자연스레 문명의 혜택을 동경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네모나게 일정한 고층건물 속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자연 속에서 배워간다. 자연은 모든 사물을 따뜻하게 감싸고 그 안에서는 모든 사물이 의미를 가진다는 진실을. 모든 것이 불편하고 부족하지만 우리의 감성만은 정말 푸르고 순수하다.
내일은 아이들과 봄나물을 캐러 나가야겠다. 발갛게 버무린 봄나물을 밥상에 한 가득 담아 놓을 수 있도록….
/김미라 충남예산 신암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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