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의 길은 죽음에 대한 태도이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사무라이의 길’중). 실현은 어려워도 얼마나 멋진 유혹인가. 죽음을 초월한 무사의 길. 그 사무라이의 길에 짐 자무쉬가 빠져 들었다.‘천국보다 낯선’ ‘데드 맨’에서 짐 자무쉬는 희망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 같은 늪에 빠져 있으나 그들끼리조차 소통되지 않는 상황을 그렸다. 그들에게 소외는 태생적인 것이었다.
‘재미’를 척도할 수 없는 영화들이 있다. 재미를 따지기 이전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이유, 장면과 소품의 의미를 궁리하게 만드는 영화들. 짐 자무쉬의 영화들은 주로 이런 부류인데 ‘고스트 독(Ghost Dog)’도 그렇다.
딸의 늙은 연인을 죽여 달라는 마피아 보스의 청부로 살인을 저지른 고스트 독(포레스트 휘태커)은 다시 조직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그를 처단하려는 보스에게 쫓긴다. 고스트 독은 그 무리들을 초개처럼 날리지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자신의 주군(主君)이자 마피아 졸개인 루이(존 토메이)를 위해 의연히 죽음을 맞는다. 17세기 사무라이에서 승려로 변신한 츠네모토 야마모토가 쓴 ‘사무라이의 길’를 인용하면서 플롯 역시 사무라이극 스타일을 따른다.
여기에 자무쉬의 ‘불통(不通)’이 개입한다. 마피아는 ‘펠릭스 더 캣’‘톰과 제리’를, 딸 루이스는 ‘베티 붑’ 같은 어린이 만화만 즐긴다. 그러나 루이스, 고스트 독, 책벌레 소녀 펄린, 고스트 독, 루이를 거쳐 다시 루이스 손으로 돌아가는 ‘라쇼몽’의 윤회, 불어 밖에 모르는 아이스크림 장사와 영어만 하는 고스트 독의 ‘인지상정’은 소통에 대한 감독의 새로운 희망의 증거이다.
감독은 때론 고스트 독이 사무라이 처럼 칼 대신 총을 꺼내는 장면에 효과음을 넣어 그 양식을 희화화한다. 어지러운 인간사의 피안으로 동양 철학을 갈망하는 자무쉬. 그러나 그 역시 서양 지식인이 빠지기 쉬운 그 표피적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는 증거는 별로 없어 보인다. 22일 개봉. 오락성★★★ 작품성 ★★★☆
/박은주기자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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