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일을 두번하지 않는다.’종합광고대행사 ㈜휘닉스 커뮤니케이션즈의 기획팀장 김매기(36)씨가 광고를 천직으로 선택한 이유다. ‘광고회사의 꽃’으로 불리는 AE(Account Executive·광고기획자)로 활동한 지 11년. 현역 여성 AE 가운데 ‘최고참’으로 손꼽힐만큼 오랜 경력의 소유자이지만 하는 일은 언제나 새롭고, 젊고, 다이내믹하다. 같은 브랜드를 취급하더라도, 소비자의 취향이 시시각각 변하듯 광고도 항상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AE란 직종은 ‘하루 25시간을 산다’고 할 만큼 광고회사 중에서도 가장 바쁜 분야다. 소비 트렌드를 파악해 광고의 기본전략을 수립하는 일부터 카피라이터, 아티스트 등과 함께 광고내용을 숙의하고, 밤새도록 CF촬영장을 뛰어다니며 제작진과 씨름하고, 광고주를 찾아다니며 새 광고를 수주하고, 매체를 섭외하는 일까지…. 광고와 연관된 모든 일이 AE의 책임 아래 이뤄진다. 그래서 김씨는 스스로를 광고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 표현한다.
대학(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제일기획 공채 13기로 입사한 것이 1989년. 당시만해도 여성 광고인하면 으레 카피라이터 정도가 보통이었지만 김씨는 남성들의 고유영역처럼 여겨졌던 AE에 당당히 지원, 합격했다. 당시 함께 직장생활을 시작한 동기들은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업계를 떠났지만 김씨는 ‘광고일이 너무 재미있어’고집스럽게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 이젠 수하에 7∼8명의 AE를 거느린 국장급 팀장으로, 혼자서 연간 200억원 이상의 광고를 주무르는 거물급 AE로, 업계에선 그의 이름 석자를 모르는 이가 드물 정도다.
현재 ‘네슬레’‘피앤지’ 등 다국적기업의 광고를 도맡아하고 있는 김씨는 제일기획 시절 초콜릿 광고로 이름을 날렸다. 대표적 예가 ‘정(情)’을 주제로 내세운 동양제과 ‘초코파이’광고. 보통 사람들의 가슴뭉클한 이야기들을 담은 이 시리즈 광고 덕분에 ‘초코파이’는 단일 품목으론 식품업계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영예를 안게됐다. ‘투유 초콜릿’이란 브랜드를 맡았을 땐 유덕화, 장국영 등 홍콩 스타들이 출연하는 영화 스타일의 광고를 기획, 무명의 제품을 3개월만에 업계 1위에 올려놓았을 만큼 성공을 이끌어냈다.
김씨는 ‘잘못된 광고는 죄악’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대충대충 만든 광고는 소비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힘이 없을 뿐 아니라, 가뜩이나 광고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 사회에 해악만 끼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광고를 제작하면서 입김 센 광고주의 의도대로 적당히 타협하는 법이 없다. ‘광고주가 하자니까 그냥가자’‘바쁘니까 대충하자’는 식의 태도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철두철미한 기획과 전략 아래 가장 이상적인, 최선의 광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광고일을 하다보니 신문을 들면 습관적으로 아래에서부터 읽고, TV는 프로그램보다는 CF 위주로 보게 된다는 김씨는 감각이나 상상력에만 의존해서는 결코 ‘좋은 광고’가 나올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광고기획은 밤낮없이 일을 찾아다닐 수 있는 체력과 추진력, 다양한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능력과 리더십이 무엇보다 필요한 직종”이라며 “여성이 강력한 소비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시대에, 그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읽을 줄 아는 여성들이야말로 성공을 꿈 꿔볼 만한 분야”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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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이나 꾸밈없이 정직하게 살자
인생에 있어서 신뢰만큼 큰 재산은 없다. 정직하게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것 이상으로 값진 것은 없다. 요령이나 편법을 동원하지 않고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 당장은 손해를 안겨줄지 몰라도 결과적으론 가장 빨리 성공에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나의 실수로 문제가 생길 경우에도 감추려 하지말고 솔직히 드러내고 해결책을 강구한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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