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최민 조직위원장(영상원 원장)은 “조금은 다른 축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다르다’는 말은 부산영화제나 부천영화제와의 차별성을, 나아가 영화에 대한 통념과 고정관념을 넘어서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안영화를 찾고, 새로운 세기의 화두가 된 디지털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처음 디지털 프로젝터로 상영하며, 작지만 반짝이는 아시아 독립영화를 지지하는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CIFF).
예향(藝鄕)인 그곳 음식처럼 정갈하고 독특한 축제가 홍상수 감독의 신작 ‘오, 수정’의 월드 프리미어를 시작으로 28일부터 5월 4일까지 막을 올린다.
세계 각국 작품들(170여편)을 상영하고, 스타들이 오고, 거리에서 이런저런 행사를 벌이는 것은 여느 영화제와 비슷하지만, CIFF는 그 시선이나 느낌이 분명 다르다.
메인프로그램에는 세계영화의 새로운 경향으로 대중성에 도전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시네마스케이프’(18편)가 있고, 디지털영화들의 반란현장인 ‘N_ 비전’(18편)이 기다린다. 동아시아의 젊고 깊은 영화 17편은 ‘아시아 인디영화 포럼’에 모이고, 장·단편영화 20편이 자신들이 서야 할 자리를 생각하는 ‘한국영화’의 시간도 있다.
CIFF가 새 천년의 시작으로 선택한 섹션2000은 상상과 도전과 추앙의 마당이다. 다큐멘터리와 번갈아 2년마다 선보일 ‘애니메이션 비엔날레’는 동화 너머 숨은 진실을 찾는 ‘상상의 집’(17편)과 ‘상상의 미로’(23편)를 드나든다.
‘오마주’(18편)는 여성영화의 거장 샹탈 에커만(벨기에), 대안영화를 만들어 온 알렉산더 소쿠로프(러시아)와 후샤오시엔(대만)에게 바치는 경배. ‘회고전’은 정치적 아방가르드 영화 8편을 경험하는 자리. 1960, 70년대 미국 B급영화의 대부 로저 코먼 감독의 밤(29일)과 공포와 판타지의 ‘아시아 인 히스테리아(Asia In Histeria)’(30일), 7시간 18분짜리 영화 ‘사탄 탱고’(5월 1일)로 밤을 지새는 ‘미드나잇 스페셜’이 전주를 잠 못들게 한다.
■ 특별프로그램도 대안영화제답다.
디지털을 화두로 잡은 워크샵과 트랜스아시아영화를 주제로 심포지움을 열고, ‘디지털 삼인삼색’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박광수와 김윤태, 중국 장위엔 감독이 N(새로운 세대, 새로운 기술, 네트워크)을 주제로 각자 30분 길이로 만든 작품을 상영한다. 변영주 감독이 전주 영화제를 기념해 만든 다큐멘터리 ‘지역영화사-전주’와 시민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한국과 독일영화 15편도 준비했다. 상영관은 전북대 문화관, 덕진예술회관, 시내 8개 극장과 덕진공원 야외극장.
■이벤트와 초청 해외감독들
개·페막식 (28일과 5월 4일 오후 7시·전북대 문화관) 사회는 ‘구멍’의 주연 안성기-김민, 문성근-방은진 커플이 맡는다.
전야제에서는 영화비 건립식을 갖는다. 영화제 동안 ‘영화의 거리’(오거리 진입로-새하나 백화점)가 조성되고, 그곳에서 매일 우리 영화인들의 얼굴을 떠서 보관하는 페이스 프린팅 행사도 볼 수 있다. 만화영화 마니아 자신들이 좋아하는 게임이나 만화 속 캐릭터의 옷을 입고 흉내내는 ‘고스툼 플레이’도 마련했다.
영화제를 빛낼 스타는 홍콩의 장만옥과 양조위, 중국배우 진싱, 대만의 이강생, 일본의 시즈미 가오리. 감독으로는 대만의 후사오시엔, 완련, 황위샨, 훙훙과 홍콩의 왕자웨이, 말레이시아의 차이밍량, 중국의 지아장커와 왕취엔안, 일본의 야구치 시노부와 스와 노부히로 등이 전주를 찾는다. 미국의 로저 코먼과 수전 피티, 벨기에의 프레데릭 폰테인, 영국의 존 아캄프라, 체코의 이지 바르타 감독도 온다.
■CIFF 길라잡이
서울역과 전주역, 전주버스터미널에 안내 데스크가 있다. 전주에 도착하면 자원봉사자가 탑승한 셔틀버스(15분 간격)가 기다린다. 입장권은 전북은행 전국 지점, 전화 (700-3114, ARS)와 인터넷 (http://www.ciff.org)으로 예매중이다. 일반 상영작 4,000원, 개막작과 1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지는 아시아 인디포럼 수상작인 폐막작 8,000원, 미드나잇 스폐셜 1만원. 고사동에 있는 티켓마스터와 전북대문화관, 덕진예술회관에서의 현장 구입도 가능하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전주국제영화제] 놓치기 아까운 영화 20
1. 포르노그라픽 어페어/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합작. 감독 프레드릭 폰테인, 주연 나탈리 베이. 섹스 파트너로 만난 남녀의 관계변화. 1999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2. 요나와 릴라/ 프랑스와 스위스 합작. 감독 알랭 타네, 주연 제롬 로바르. 25세가 돼 아프리카 여성 릴라와 결혼한 요나. 그들이 세기말과 다르지 않은 새로운 세기의 시작인 2000년을 경험한다.
3. 음지/ 프랑스. 감독 필립 그랑드리외. 회화적 서정미에서 극단적 표현주의까지. 연쇄살인범과 사회부적응증 여자의 인간적 유대와 구원의 문제로 1998년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4. 홀리 스모크/ ‘피아노’의 뉴질랜드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의 신작. 인도의 한 종파 지도자에 빠진 여자(케이트 윈슬렛)와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고용된 남자(하비 키텔)가 벌이는 유쾌한 코미디.
5. 안개의 언덕/ 영국 존 아캄프라 감독의 기억에 대한 자전적 기록. 어머니의 죽음과 복제양 돌리 탄생의 교차. 아름답고 시적인 디지털영상으로 담은 문명비판.
6. 항해/ ‘과거에서 온 도시들, 3부작’의 레바논 출신 크리스티앙 브스타니 감독이 1534년 포르투갈 함대와 함께 떠나는 일본 전국시대 여행. 실사와 컴퓨터 영상의 매끄러운 결합.
7. 세 오렌지의 사랑/ 대만 훙훙 감독의 데뷔작. 레즈비언 커플과 한 남자의 성적 관계로 드러나는 1990년대 말 타이페이 젊은이들의 사랑과 일상. 1999년 낭트영화제 심사위원상.
8. 새로운 신-포스트 이데올로기/ 일본 좌파감독 츠치야 유타카이의 다큐멘터리. 우익 국수주의 펑크밴드를 이끄는 10대 소녀가 30년 전 비행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탈출한 적군파 테러리스트를 만난다.
9. 앨리스/ 감독 마에지마 켄이치. 디지털 영상 그대로 일본서 처음 극장 상영을 한 3차원 컴퓨터그래픽 장편 애니메이션. 악몽으로 변해버린 미래세계를 바꾸려는 소녀 앨리스의 싸움.
10. 파리로 간 빨간 모자/ 러시아 점토애니메이션 뮤지컬. 감독 가리 바르딘. 파리에 사는 할머니에게 가는 모스크바의 빨간 모자 소년과 그 뒤를 쫓으며 모든 것을 삼키는 늑대. 1991년 안시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11. 쾌락의 공범자들/ 체코의 초현실주의 감독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최신작. 실사 액션과 애니메이션의 경게를 허무는 방식으로 표현한 인간 쾌락의 원칙에 관한 프로이트적 보고서.
12. 악어의 거리/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재미있다고? 영국 쿠퀘이 형제가 인형 애니메니션과 라이브 액션으로 만든 인형들의 거리인 이 컬트 무비를 보라.
13~ 15. 샹탈 애커만의 세작품/ 집에서 매춘을 하는 가정주부의 일상을 건조하게 담은 ‘잔느 딜망’과 영원히 방황하는 유대인 ‘안나의 랑데부’와 폭우 치는 여름밤의 욕망과 감정인 ‘폭풍의 밤’.
16. 스톤/ 알렉산더 소쿠로프 감독이 러시아 영혼의 순결성을 묻는다. 체홉박물관에서 유품을 관리하는 청년이 자기 집에 찾아온 체홉의 유령을 만난다.
17. 강/ 인도 급진파 감독 리트윅 가탁의 1962년 작품. 삶의 터전을 잃어러빈 1948년의 캘커타 피난민들의 삶을 낱낱이 파헤친 수작.
18. 사탄탱고/ 헝가리 벨라타르 감독의 7시간 18분짜리 영화. 기계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구원.
19. 에이미와 야구아/ 독일의 막스 페어베르뵉 감독이 2차대전 중 베를린에서 있었던 네 아이의 엄마와 유대인 여인의 비극적 사랑을 담았다.
20. 서커스단의 비밀/ 초기 호러 영화를 확립한 미국 토드 부라우닝 감독의 1927년 흑백무성영화. 단장 딸을 사랑하는 서커스단의 칼던지기 곡예사의 음모와 살인. 변사 신출씨가 나와 우리말로 대사를 해준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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