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5대 총선을 일주일 남짓 앞두고 일어났던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가 청와대, 국방부, 합참관계자들에 의해 발생일시가 조작되고, 대북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도 미군과의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격상발표되는 등 사실보다 부풀려져 총선에 의도적으로 이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당시 합참 정보참모부 전략정보과장으로 대북동향 정보분석 실무책임자였던 김남국(金南國)예비역대령은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판문점 무력시위는 96년 4월4일부터 3일간 일어났으며 긴장을 초래할 특이동향도 없었으나 청와대 지시를 받은 국방부가 총선에 이용하기위해 4월5일과 7일 사이에 발생한 것처럼 날짜를 바꾸고 엄청난 위기상황인양 과장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당시 대북정보판단 주무과장으로 발생일시를 조작해 발표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합참상황실내 작전을 담당하던 모중령이 ‘윗선의 지시’라며 강행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또 “96년 4월5일 국방부가 한미합의로 ‘워치콘3’를 ‘워치콘2’로 격상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미군측의 반대에 부딪쳐 이틀뒤인 4월7일에야 가까스로 서류상으로만 결정났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히 당시 청와대 유종하(柳宗夏)외교안보수석이 수차례 합참에 전화, 김동신(金東信)작전본부장에게 “전투복을 착용한 장군이 현장감있게 브리핑하라”고 요구하는 등 구체적인 홍보방안까지 지시했으며 8일 밤에야 “여론이 15% 좋아졌으니 이제 브리핑을 중지하라”고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모든 상황이 끝난 4월8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뒤늦게 위기감을 조장했으며 이회창(李會昌)신한국당선대위원장은 남북긴장고조를 빌미로 안정의석을 호소하는 등 판문점 사건은 철저히 총선에 이용됐다”며 “이양호(李養鎬)국방장관, 김동진(金東鎭)합참의장, 김동신작전본부장 등 정치군인들이 정치권의 하수인으로 전락, ‘북풍’을 일으킨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동국기자
■김남국은 누구인가
김남국(金南國·52)예비역대령은 1996년 4월 당시 북한의 군사동향정보를 판단하는 실무책임자인 합참 전략정보과장이었다.
김씨는 당시 북한군의 동향에 대해 “종종 발생한 일로 특이한 위험은 없다”고 보고하고 발생날짜를 바꾸자는 내부건의에 대해서도 “광주청문회도 못 봤느냐”며 반대한 것 등이 문제가 돼 보직해임된 뒤 한직을 돌다가 지난해 말 전역했다.
육사28기로 한때 잘나가던 장교였던 그는 “한직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정치군인들을 용서하려고 노력했지만 안보문제가 선거에 악용되는 일을 막아야한다는 양심의 소리를 저버릴 수 없었다”며 폭로이유를 밝혔다.
그는 “정치공작의 적극가담자는 정권이 바뀌어도 출세가도를 달리는 반면 양심적으로 맞선 참군인은 전역되거나 한직으로 쫓겨난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며 당시 주요 가담자 및 반대자 명단도 함께 공개했다.
김씨는 “새정부 출범후에도 당시 정치군인들이 군수뇌부를 차지, 군내에서 진상을 밝힐 기회가 없었다”며“이달초 공개하려고 했으나 주변에서‘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총선이후 공개를 권해 이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이동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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