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작가 김병기 회고전85세 나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인생을 결산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시기? 재미작가 김병기씨는 정정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죽는 그 순간까지 인생은 계속되는 것임을 알려준다.
20일부터 5월 14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회고전을 갖는 김병기씨는 1916년생. 남들 같으면 벌써 은퇴했을 나이에 그는 여전히 생동감 넘치는 붓질로 새로운 창작 세계를 이끌어 내고 있다. 작가는 “나의 작품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게 있어 작품은 언제나 유동적이며 과정적이다”라는 말로 이번 회고전 성격을 규명한다. 네번째 국내 개인전.
그는 한국 현대미술의 태동기에 큰 족적을 남겼던 작가다. 도쿄 아방가르드 미술연구소와 도쿄문화학원 미술부 출신으로 김환기, 유영국과 함께 우리나라에 추상미술을 최초로 도입한 작가. 1951년부터 1958년까지 서울대 미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1964년에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맡아 미술행정가로도 활약했다. 6·25전쟁 당시에는 국방부 종군 화가단의 부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젊은 작가들 중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65년 상파울로 국제전 커미셔너 겸 심사위원으로 출국했다가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타이틀을 던져버리고 홀연히 미국으로 사라진 것이다. “한국 화단에서 감투란 감투는 다 써봤으나 화단의 권력이란 것이 허망하기만 했다. 작가로서 생활을 회복하고 싶었다.”
이후 그는 뉴욕에 머물며 자신만의 독특한 추상세계를 펼치고 있다. 자연의 이미지에서 옮겨왔다는 수직과 수평의 독특한 화면 질서는 화가 몬드리안의 수직과 수평구조를 연상케하고, 뉴욕 맨해튼의 빌딩숲을 떠올리게도 한다. 작가의 표현대로 “비형상을 넘은 새로운 형상의 추구”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1960년대 ‘유연견남산’에서 1970년대의 ‘깊은 골짜기에서 떠나오다’ ‘꽃핀 능금나무’, 1980년대의 ‘경주의 나무’ ‘천안문 엘레지’ 1990년대의 ‘토기의 정물’ ‘붉은 꽃’ 등 50년 동안 뉴욕-한국을 오가며 제작했던 작품 75점을 선보인다.
오후에 전시장을 찾으면 아름답게 늙은 ‘현역’의 노화가를 직접 만날 수 있다. 또 뛰어난 기억력으로 풀어내는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종로보통학교) 이중섭의 얘기도 들을 수 있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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