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압구정동 뒷골목 주차장. 우중충한 벽면 한 편에 둔탁한 회색 쪽문이 달려 있다. 화려하고 번듯한 앞면과는 영 딴판이다. 이곳은 KBS가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의 후속으로 24일부터 방송할 월·화 미니시리즈 ‘바보같은 사랑 ’의 촬영 현장. 주인공 옥희가 일하는 봉제공장의 입구이다. “왜 주차장 쪽으로 가요? 정문으로 내려가지.” “정문으로 내려가면 잘난 사람들하고 부딪치잖아, 이 행색으로 섞여봤자 속만 뒤틀려.”하루에도 수십대씩 외제차가 오가는 화려한 골목에서 제작진은 이런 장소를 찾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번듯한 초현대식 빌딩 뒤의 어두컴컴한 공장 입구,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내려다 보이는 공장의 옥상이 주로 주인공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 설정되어 있다.
이 드라마는 박영한의 소설 ‘우묵배미의 사랑’이 원작으로 1990년도에 장선우 감독이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내면을 파고드는 언어와 세밀한 연출로 1998년 방영 당시 PC통신에 동호회까지 생길 정도로 마니아들의 격찬을 받았던 미니시리즈 ‘거짓말’의 작가 노희경과 표민수 PD, 그리고 그 때의 주인공 배종옥이 다시 모였다.
무능력하고 여자들에게 한 눈 잘 파는 재단사 상우(이재룡)는 동거남에게 맞고 사는 미싱 보조 옥희(배종옥)에게 집적거린다.그러나 결국 옥희와 진실한 사랑에 빠지면서 인생에 대해 진지해진다. 옥희는 매일 맞으면서도 아침마다 해장국을 끓여 바치는 ‘바보 같은 여자’.
옥희의 남편 용배(김영호)는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옥희를 앞에 놓고서도 늘상 아들 재민이를 두고 나간 전처 은경(임세미)을 찾아 헤맨다. 한심한 남편 상우를 늘상 두들겨 패는 억센 여자 영숙(방은진)은 밑바닥 인생을 거쳐 상우와 결혼한 인물로 상우를 두고 옥희와 일전을 벌인다. 표민수 PD는 이들에게 주인공 못지 않은 애착을 보인다. “영화와는 달리 사랑을 빼앗긴 사람들의 슬픈 내면도 깊이 들여다 볼 것이다.”
봉제공장과 산동네를 배경으로 피어날 소외된 이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질지. 작가 노희경은 이 드라마를 통해 “사랑이 배부른 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말한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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