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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도자와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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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도자와 거짓말

입력
2000.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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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서는 지도자의 거짓말이 어디까지 용인될 수 있느냐는 문제로 총리와 언론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기상이나 취침시간 같은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해도 괜찮지 않느냐”는 모리 요시로 총리의 말이 단초가 됐다.오부치 게이조 전총리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사실을 정부가 22시간 동안 숨긴 데 화가 난 기자들이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고 보느냐고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실수로 볼 수도 있지만 총리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모리 총리는 “언론이 이렇게 나오면 앞으로 총리의 사생활 동정 공표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맞받아 쳤다.

말로만 그랬을 뿐 발표는 관행대로 계속되고 있어 신경전은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앙금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같다. 임시총리 직무대행역을 수행했던 아오키관방장관에게 오부치의 지명이 있었느냐는 문제와, 모리총리 옹립이 밀실에서 이루어진 데 의문을 품은 여론을 일부언론이 집요하게 문제삼고 있다.

■현재 의식불명 상태로 인공호흡기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오부치씨가 처음 쓰러진 것은 4월1일 밤이었다. 취임 2년이 다 되도록 3일 밖에 쉬지 못했다는 그는 그날도 거듭된 격무에 지쳐 관저로 돌아와 일찍 휴식을 취했는데, 잠든 사이 이상증세를 목격한 부인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관방장관이 돌아간 직후인 2일 새벽부터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총리부는 정상업무중이라고 발표했고, 정부는 22시간 동안 이 사실을 숨겼다.

■혼수상태가 계속되자 관방장관이 직무대행에 취임, 당 간부 4명과 협의해 모리간사장을 후임총리로 옹립했다. 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 언론들은 레닌 사후 스탈린이 동료 2명의 지지를 얻어 당내반론을 제압하고 후계자가 된 사실에 빗대어 ‘크렘린 식 정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지도자의 유고사태를 22시간이나 숨긴 사실도 그렇고, 총리의 후임자 지명여부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왔다갔다 한 점, 작은 거짓말은 괜찮다는 지도자의 발상까지가 그런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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