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5시 대전 원자력연구소는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작은 병을 배달한다. 요오드-131을 비롯한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Radio Isotope·RI)다. 일반인들은 방사선이란 말만 들어도 꺼려지지만 암환자들에겐 없어선 안 되는 치료물질이다.원자력연구소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에서 중성자를 쪼여 방사능을 띠도록 만들어진 이 동위원소는 방사선 차폐 작업실인 핫셀(Hot Cell)에서 적절한 처리를 거쳐 나온다. 이렇게 매일 새벽 ‘신선한(?)’ 의료용 동위원소를 배달해야 하는 이유는 의료용 RI인 경우 에너지가 작은 만큼 반감기(방사선 방출로 원자의 수가 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가 짧기 때문이다.
■암 치료제 만드는 하나로
하나로에서 의료적으로 중요한 동위원소를 만들어 내는 것은 동위원소 방사성응용연구팀. 연금술사와 같은 이 연구자들의 손을 거쳐야 방사능을 띤 물질이 의료용으로 의미있는 물질이 된다. 팀장 박경배박사는 곧 암치료 신약을 내놓는다. 지난해 임상시험 중 간암환자에 놀라운 치료효과를 거둬 화제를 모았던 ‘홀뮴166-키토산’이 6월 제2상 임상시험을 마치면 하반기 신약으로 생산된다. 세계적으로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방사능 치료물질은 3-4종. 박박사팀은 체내 조직에 잘 달라붙는 키토산착물을 홀뮴과 결합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정상세포가 아닌 암세포에만 작용하는 암치료제를 개발한 것이다.
박박사의 다음 목표는 뇌질환 진단제 개발이다. 테크네튬-99를 이용, 치매·파킨슨병 등 뇌질환을 살아있는 상태에서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는 진단제를 개발하려는 것이다. 홀뮴-166 개발에 키토산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뇌질환을 효과적으로 검출할 수 있는 표지화합물을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박박사는 “치매가 일어난 뇌 신경세포는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에 의해 둘러싸이게 되는데 이 단백질과 잘 결합하면서 테크네튬과도 결합할 수 있는 표지화합물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표지화합물이 테크네튬-99를 질환부위에 모이게 하면 감마선 카메라로 질환여부를 식별할 수 있다.
■RI 전용 원자로 만든다
원자력연구소는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 외에 RI생산 전용 원자로를 설립할 계획이다. 예산 600억~800억원 정도를 들여 하나로의 3분의1 규모의 RI생산 전담 원자로가 있으면 IMF 때 환율상승으로 동위원소를 구하지 못했던 것 같은 일을 막을 수 있다.
하나로에서 요오드-131 등 의료용 RI를 생산하고는 있지만 진단용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테크네튬은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테크네튬은 세계시장의 75%를 캐나다의 노디온사가 독점공급하고 있는 형편이다.
원자력연구소는 2004년까지 테크네튬-99를 만드는 모핵종 몰리브덴-99를 생산하는 기술, 운송하기 쉬운 몰리브덴-99 상태에서 테크네튬-99로 변환시키는 발생기를 제조하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 중이다. 이러한 기술과 전용로가 확보되면 국내 수입대체는 물론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에 의료용 RI를 수출할 수도 있다.
박경배박사는 “우리나라의 의료용 RI시장은 연 200여억원, 일본의 경우 그 10배에 달한다”며 “일본 역시 의료용 RI 전용원자로가 없고 단가는 더욱 비싸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용로가 생기면 의료용 RI생산의 아시아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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