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총선 이후 국면 전환책 마련을 위한) 장고에 들어 갔다.’ ‘여권이 무리수 동원하면 야당과 충돌할 것이다.’‘꼼수와 뒤통수치기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북한이 꽃놀이패를 즐기고 있다.’최근 며칠간 신문에 실렸던 기사 중에서 바둑용어가 들어간 것을 몇 개 발췌한 것이다. 장고, 국면, 무리수, 꼼수, 꽃놀이패 등 바둑전문용어들이 아무런 보충설명 없이 사용되었지만 바둑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 관용적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말해지듯 바둑용어 중에는 본래의 뜻 외에도 독특한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정치 9단이라든가 포석 정석 행마 수순 초읽기 끝내기 계가 노림수 자충수 대마불사 응수타진 수순착오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바둑 용어들이 신문 잡지 등 대중 매체에서 시사적으로 미묘한 사안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바둑 용어들의 이같이 다양한 쓰임새에 비해 극히 일부만이 사전에 등재되어 있거나 혹은 잘못 설명되고 있다. 더욱이 바둑 용어로서의 본 뜻보다는 변형된 일상어로서의 의미가 더 널리 강조되어 심지어 그것이 바둑 용어라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면서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빵때림’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바둑돌을 잡자 마자 배우게 되는 가장 기초적인 바둑용어이다. 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선생이 50년대에 만든 것으로 후일 어감이 너무 거칠다 하여 ‘빵따냄’으로 고쳤으나 지금까지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다. 한데 국어사전에는 각양각색으로 설명되어 있다. 어떤 사전에는 ‘빵때림’이 ‘돌 네 개로 상대방의 돌 한 점을 때려냄’, ‘빵따냄’은 ‘빵때림으로 상대방의 돌을 따내는 일’이라고 두 가지를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고 또 다른 사전에서는 ‘빵따냄’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거나 혹은 ‘방따냄’이라는 엉뚱한 어형이 실려 있기도 하다.
이같은 오류는 근본적으로 바둑계의 책임이기도 하다. 현대바둑이 도입된지 벌써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바둑용어의 체계적인 정립이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발간되는 각종 바둑관련 출판물에서 걸다 걸치다 가르다 갈라치다 밀다 끌다 뻗다 껴붙이다 끼우다 찝다 등 다양한 용어들이 명확한 의미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제멋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바둑이 기술면에서 세계 제패를 이룩한지도 근 10년이 가까워 오는데 이제는 바둑의 승부외적인 면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된 듯하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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