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감독 빌 어거스트는 상복이 많은 국제적인 감독으로 국내에는 초기작 3편과 ‘최선의 의도’를 제외한 전 작품이 소개되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라는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국내 극장 개봉시 엄청난 푸대접을 받았던 ‘정복자 펠레’(1987년)는 의외로 많은 이들이 잊지 못할 감동작으로 꼽고 있다.글렌 클로즈, 메릴 스트립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대하극 ‘하우스 오브 스피리트’(1993년), 그린랜드 설경이 인상적인 미스터리물 ‘센스 오브 스노우’(1997년)을 거쳐 문예물 ‘레미제라블’(1998년)까지 개봉됐다. 성장 드라마 ‘정복자 펠레’의 감동이 컸던 만큼 규모에 함몰된 할리우드에서의 최근 작에 대한 실망이 적지 않다. 그런 실망감을 만회해 줄 작품이 모국에서 만든 1996년작 ‘예루살렘’(12세 관람가·스타맥스)이다.
제목과 서두의 배경 설명 때문에 종교 영화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참 신앙에 대한 질문과 나름의 의견 제시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좁은 의미의 영화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원죄와 같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여러 인물을 통해 참 삶을 모색하는 진지한 드라마라는 것이 광의의 올바른 영화 보기가 될 것이다.
신의 조롱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만큼 어긋나는 운명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용기 그 자체가 곧 구원이 될 수 있다는 위안을 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노벨상 작가인 셀마 라거로프 원작의 깊이, 중심을 잃지 않는 연출력, 퍼닐라 오거스와 막스 폰 시도우와 같은 연기파 배우, 촬영 감독 요르겐 페르손 등의 공력이 어우러져 모처럼 영화다운 영화에 빠지는 기쁨을 얻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168분짜리 영화를 비디오 한 개로 출시하기 위해 132분으로 잘랐다는 것. 최근들어 가위질이 많아졌는데 ‘거짓말’ ‘감각의 제국’ 처럼 등급 심의를 걱정해 미리 손질하는 경우도 있지만 ‘리플리’ ‘예루살렘’처럼 상영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잘리는 경우가 더 많다. 수입사나 제작사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두 개 비디오로 출시되면 아예 볼 엄두를 안 내는 관객도 문제이다 . 인터넷을 통한 영화 감상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로 젊은 네티즌이 두 시간을 진득하니 앉아서 영화를 보려 들지 않는다고 예측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의 관객은 한정되기 마련이니 노커트 판임을 강조하는 것이 더 득이 되지 않을까.
◇감상 포인트/ 종교의 유무, 차이를 떠나 진지한 삶의 자세를 사색하고픈 분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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