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에 가면 ‘기가 약하다’거나 ‘피가 부족하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일상생활에서도 ‘기가 막힌다’, ‘기가 세다’, ‘혈색이 왜 그리 창백하니’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처럼 옛날에는 기(氣)와 혈(血)이라는 표현이 생활에서 많이 사용됐으나, 요즘엔 한의원에서 쓰는 의학용어로 인식되면서 어려운 단어가 되고 말았다.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기를 느끼고 있으면서도 인식하진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 변화를 잘 관찰해 보면 바로 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기분이 좋으면 느긋해지면서 뭐든지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것은 몸의 기가 편하게 풀어지면서 나타나는 행동이다.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쁘면 ‘뚜껑이 열린다’라는 표현처럼 기가 위로 치솟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또 무서우면 몸이 움츠러들고 심하면 바지에 실례를 범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기가 아래로 하강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말을 많이 할 경우 기운이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기가 약해지는 과정이다.
혈은 ‘인체의 피’라는 의미와도 통하며, 대개 혈색(血色)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혈색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혈색이 좋다는 것은 영양상태가 양호해서 얼굴에 윤기가 돌거나 얼굴빛이 약간 보기 좋을 정도로 붉은빛을 띤 경우를 말한다. ‘혈색이 창백하다’거나 ‘혈색이 좋지 않다'는 표현은 피부가 거칠고 핏기가 없이 하얀색이나 약간 노란빛을 띤 경우를 말한다.
기와 혈은 인체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기는 보이지는 않지만 인체의 생명력 중 에너지를 대표하고, 혈은 인체의 생명력 중 영양성분 및 체액성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기와 혈은 항상 같이 행동해야 인체가 건강할 수 있다.
즉 기는 혈이 있어야 몸 안에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고, 혈은 기가 있어야 인체의 모든 곳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 건강하다는 것은 기와 혈이 인체 모든 곳으로 잘 순환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렇게 기혈의 순환상태를 조화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한의학의 건강원리이다.
/정희재·경희대한방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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