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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열전] (7) 이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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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열전] (7) 이금림

입력
2000.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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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열전] 이금림허전하다. 뭔가 하나 빠진 것 같기 때문이다. 24일부터 방송될 MBC 일일 드라마 ‘당신 때문에’의 작가 이금림(52)의 요즘 심경이다. 새 극본을 쓸 때마다 “열심히 써 많은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라”는 ‘혼불’의 작가이자 이금림의 절친한 친구였던 최명희(1998년 사망)의 격려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만큼 새 드라마를 시작할 때는 피가 마르기에 위로받고 싶어한다.

지난해 7월 SBS 드라마 ‘은실이’ 가 끝난 뒤 만난 이금림은 함박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일일극 방송을 11일 앞둔 13일에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한 줄 대사가 써지지 않아 3일째 헤메고 있다고 했다. 숨이 막혀 산에 오르기도 한다. 이금림의 극본 쓰는 스타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대사가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친다. “저는 일필휘지로 글을 쓰지 못해요. 한 대사를 100번을 다시 쓴 적이 있어요.”

요즘 가볍고 감각적인 드라마가 범람해도 흔들리지 않고 진지한 작품을 쓰는 사람이 바로 이금림이다. ‘당신 때문에’에선 50대 중년 여성 3명을 전면에 내세워 중년의 재혼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이처럼 이금림의 드라마에는 강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치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옛날의 금잔디’, 직장여성의 애환을 다룬 ‘당신이 그리워질 때 ’, 그리고 사람들간의 정과 사랑을 담은 ‘은실이’ 등 그녀의 작품에는 하나의 주제 의식이 강하게 부각된다.

“코믹해야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간의 따뜻함과 휴머니즘을 그려도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20년 작가 생활을 통해 체감했지요.”

SBS ‘은실이’의 마지막 부분을 쓸 때 그녀는 탈진해 링거를 꽂은 채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야 했다. 주사바늘에 묻어나온 피는 선홍빛이 아니라 검붉은 색이었다. 고통이었다.

그런데 왜 쓰는가? “물론 고수입과 재택 근무라는 장점이 있지요. 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역동성이 있어서 힘들어도 드라마 작가를 해요. 제 작품을 보면서 삶의 방향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시청자가 있다면 그것이 저의 존재 의미지요.” 1970~1980년 10년 동안의 교사생활을 그만 둔 이유이기도 하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 매너리즘에 빠진 자신이 견디기 힘들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즐거우면서도 창의적인 직업인 요리사가 되고 싶다며 웃는다.

교사를 그만 두고 주위의 권유로 1980년 청소년 대상의 KBS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대본을 쓴 것이 작가로서의 입문 계기다. 당시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성우 송도순의 남편인 최상식 PD(KBS 드라마국장)가 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드라마로 전업을 권했다. 첫번째 작품이 단막극 ‘소라 나팔’. “잘 썼다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 출연한 반효정 선생이 극본이 별로라는 말을 해요. 충격이었지요. 지금도 그 극본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려요.” 그녀는 극본 몇 권과 드라마 작법책으로 독학한 작가다.

이금림의 드라마는 매우 사실적이다. 이번 ‘당신 때문에’에는 이벤트사 직원과 경륜 선수가 나온다. 이금림은 드라마를 시작하기 6개월 전 주제와 메시지를 생각하고, 드라마의 큰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 그림을 채울 등장인물과 배경을 설정한다. 알지 못하는 분야는 보조 작가와 함께 취재를 해 가급적 현실에 맞게 극본을 쓴다. “‘당신 때문에 ’ 에 나오는 경륜 선수는 우연한 기회에 경륜장에 갔는데 그곳에서 힌트를 얻었지요.” 이금림은 드라마 작가에게 필요한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라고 했다. 그녀의 손에는 늘 수첩이 들려있다.

이금림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작가 남편과 자식들이라고 말한다. “남편은 지방대학 교수입니다. 만약 매일 얼굴을 봤으면 작가 생활을 못했겠지요. 보약 한번 제대로 지어주지 못했어요. 남편에게 참 고마움을 느껴요.” 영국과 오스트리아에 유학가 있는 두 아들에게도 미안하다고 했다.

이금림의 마지막 희망. “드라마가 끝나면 시청자들로부터 ‘이금림은 참 괜찮은 작가’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약력

1948년 전북 남원 출생

1970년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70~1980년 인성여고·명성여고 교사

1980년 ‘별이 빛나는 밤에’ 방송 작가 데뷔(KBS 라디오)

1981년 ‘소라 나팔’ 드라마 작가 데뷔(KBS)

1982년 ‘호랑이 선생님’(MBC)

1983년 ‘고교생일기’(KBS)

1985년 ‘물보라’(MBC)

1988년 ‘일출’(KBS)

1990년 ‘옛날의 금잔디’(KBS)

1993년 ‘사랑을 위하여’(KBS)

1995년 ‘당신이 그리워질때’(KBS·백상예술대상 드라마 극본상 수상)

1997년 ‘지평선 너머’(SBS·PD연합회상)

1999년 ‘은실이’(SBS·PD연합회상)

2000년 4월 24일 ‘당신 때문에’(MBC·24일 방영 예정)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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