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문민정부 시절 대북 정책을 지휘했던 두 분으로서는 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듣고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한완상 = 큰 쾌거지요. 국토의 분단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마음속의 증오와 불신을 극복하고 냉전의 역사를 종식시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정종욱 = 이제 우리도 정상회담을 통해 55년간 짊어졌던 분단의 짐을 벗어버릴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북한은 최근 미국 일본 등과 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 이탈리아와 수교하는 등 다면 외교를 추진하고 있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남·북 축은 빠져있었어요. 하지만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남·북 축이 가동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_ 94년에도 정상회담이 계획됐지만 김주석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무산됐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한완상 = 북한의 경제 사정이 훨씬 나빠졌지요. 이런 어려움이 남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도록 만들었을 겁니다. 남한과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외국의 지원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어요. 거기에는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온 우리 정부의 의지가 바탕이 됐고요. 국민 인식도 훨씬 탈냉전화했어요.
정종욱 = 94년에 북한이 군사적 이유때문에 정상회담에 나섰다면 이번에는 아무래도 경제적 어려움이 주요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으로 당시 한반도에는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결국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고 김주석은 그를 통해 정상회담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한완상 = 그랬지요. 저는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측면에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면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면 극단적 선택을 할 수가 있어요.
정종욱 = 94년을 돌아보면 지금도 땅을 칠 정도로 아쉽습니다.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김주석의 사망으로 날아갔기 때문이지요. 카터 전대통령은 김주석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정상이 직접 만나 챙겨야겠다…”고 말했다고 했어요. 정상회담에 대한 김주석의 의지가 높았던거죠. 그때 회담이 이뤄졌더라면 상당한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실무 작업팀에서도 두 정상이 만나 남북화해협력에 관한 대선언을 하고 정상회담을 정례화하며 연락사무소를 두는 것 등에 대해 준비했지요.
한완상 =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때 우리 정부가 조문 파동에 휩쓸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남북관계가 도리어 경색되지 않았습니까.
정종욱 = 김주석이 사망한 뒤 김영삼대통령이 한 말은 “아쉽다”는 것 뿐이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김주석을 조문하겠다고 판문점으로 달려가더라고요. 정부가 그걸 허락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즈음 언론에는 한국전쟁의 책임이 김주석에게 있다는 러시아의 비밀해제 문서가 공개돼 갑자기 보수적인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국회도 조문을 둘러싸고 시끄러웠고요.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조문 불허를 ‘강요’당할 수 밖에 없었지요.
_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우리 정부가 특히 주의해야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완상 =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개최에 관한 남북 합의서에 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를 적시하지 않은 것을 보고 회담이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남북기본합의서만 잘 지켰어도 남북관계는 크게 개선됐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합의서 준수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산가족 상봉만 해도 그래요. 우리는 아주 쉬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북한으로서는 체제의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니 너희도 이렇게 하라는 식의 기계적·등가적 상호주의는 피했으면 해요. 또 군사 문제, 노동당 규약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등 부담스런 문제보다는 쉬운 문제부터 풀어나가는 게 현명할 것 같아요. 북한보다 잘사는 우리가 북한 입장을 잘 헤아려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종욱 = 저는 국민의 기대가 지나치게 높은 것 같아 걱정스러워요. 또 개최 합의서에 상대편의 국호를 쓰지 않는 것 등을 보면서 역시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한총장님과 조금 생각이 다른데 첫 만남이라고 해서 너무 쉬운 것으로만 의제를 국한해서는 안되고 폭넓게 문제를 다뤄야 할 겁니다.
냉전체제 해체만 해도 구체적 합의는 어렵더라도 포괄적으로는 이야기를 나눠야한다고 봅니다.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정상이 풀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회담이 큰 성과를 내려면 한번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정상회담은 남북 모두에게 마지막 카드이기 때문에 효력을 지속시켜야하고 그러자면 정상회담이 계속돼야 합니다. 또 한가지,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등 남북이 약속했던 기존 합의를 재확인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완상 =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앞서 말했지만 북한이 기존 합의를 그대로 이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우리가 경제적 어려움을 도와주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줘야 정치 군사 사회적으로 점차 화해할 수 있을 겁니다. 정상회담이 한번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말씀에는 공감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가을쯤 서울에 한번 와주면 좋겠습니다.
정종욱 = 한국일보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국민의 79.6%가 정상회담을 찬성하고 있더군요. 94년에는 찬성자가 절반을 조금 넘었어요. 그만큼 기대감이 높은 것인데, 자칫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어요. 남북관계는 정상이 만나도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있거든요. 국민들도 그런 한계를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한완상 = 정부가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지나치게 높여서는 안됩니다. 또 공연한 오해를 불러오지 않으려면 준비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언론도 가능한 한 대승적 차원에서 보도해주길 바랍니다. 98년 베이징(北京)에서 남북비료회담이 열렸을 때 “우리가 북에 비료를 주면 우리도 뭔가를 받아내야한다”고 언론이 다그쳐 결국 회담이 실패하고 말았거든요. 언론이 이번만은 좌·우의 패러다임으로 문제에 접근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정종욱 =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이 냉전 구조를 해체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있느냐는 겁니다. 대남 전략이 아직은 완전히 바뀐 것 같지 않고요. 김정일 위원장의 측근인 군부 실세도 건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상회담은 양측의 신뢰구축에 주안점을 두어야한다고 봅니다. 이와함께 정상간에 핫 라인을 설치, 언제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완상 = 두 정상이 만나 ‘냉전해체기획단’같은 것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이를 통해 국제관계, 남북관계, 그리고 남북 양 체제내에서 제도화·내면화한 모든 종류의 냉전적 잔재를 털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일 위원장과 군부의 관계를 말씀하셨는데 저는 군부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이 군부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사업이 한 정권에서만 추진되다 끊긴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김대중 정권은 이번 정상회담을 다음 정권에 물려준다는 생각으로 착실하게 일을 추진해야 할 겁니다.
진행·정리=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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