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무서운 화마(火魔)도 조상들의 얼이 서린 사찰 등 문화재에는 아무런 해를 입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최근 강원 고성·동해·삼척·강릉 등 영동지역의 잇따른 산불과 이 지역 일대 산속의 문화재는 자칫 연기로 변해버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다. 나무로 된 옛 건물인데다 산불이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
이번 화재로 위협받은 주요 문화재는 삼척시에만 사명대사가 중건한 근덕면 궁촌리의 영은사(靈隱寺), 신흥사(新興寺) 본채와 설선당(設禪堂), 심검당(尋劍堂), 미로면의 천은사이승휴유허지(天恩寺李承休遺墟地), 조선 태조 5대조의 묘인 준경묘(濬慶墓)와 영경묘(永慶墓), 대이리의 굴피집과 너와집 등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삼척의 문화재는 물론 동해시 지상사(池上寺), 고성의 어명기가옥 등 대부분의 사찰 및 문화재가 거짓말처럼 화마를 피했다. 삼척 청연사(靑蓮寺) 주지 오철(悟徹·38) 스님은 “예전부터 사찰과 옛 어른의 사우와 묘는 묘하게도 산불도 피해갔다”며 “문화재 대부분이 명당에 자리잡은 덕이 아니겠느냐”고 풀이했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도 “월정사와 신흥사 산하 수십개의 피해지역 말사(末寺) 중에서 사찰 건물이 직접 피해를 입은 경우는 없다”며 “지상사의 경우 코 앞에서 불길이 멈춰섰다고 들었다”고 신기해 했다.
안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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