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비사(秘史)를 들추어 보면 뜻밖에도 많은 상인들을 만나게 된다. 정부가 전면에 나설 수 없는 미묘한 국면에서 이들은 막전막후의 메신저 또는 해결사로 등장해 막힌 물꼬를 튼다. 이들은 더러 국가간 이면관계의 숨은 실력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대개 당대에는 수면하에 감춰지는‘얼굴 없는 행적’이 종내는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드러나 세인들의 뒷머리를 치곤 한다.■가깝게는 지난해 사망한 유태인 거상(巨商) 사울 아이젠버그가 그런 예다. 박정희 정권의 대서독 경협을 중개하기도 했던 그는 92년 중국과 이스라엘의 수교에 핵심적 거간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 외교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이스라엘 정부측의 사후평가에서 그의 활약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프랑스가 80년대 미테랑정권 때까지도 석유회사 엘프를 통해 아프리카 독재정권들을 ‘간접경영’했던 것 역시 한 사례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 성사과정에 현대그룹이 막후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심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대그룹 고위인사들의 미심쩍은 해외 행각과 남북 당국자간의 접촉경과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고 해서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양국간 교섭창구였던 북한측 책임자가 평소 현대그룹측과 막역한 사이였다는 사실이 막후 역할론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정부와 현대측은 고개를 젓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북 정상회담이 양국 정권과 현대그룹 모두에게 득이 되는 3각 윈-윈 게임이라는 사실이다. 남북경협의 봇물이 터질 경우 최대 수혜자가 현대그룹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최근 금융계에서 나도는 ‘자금 압박설’과 연관지어 볼 때, 현대로서는 현실 돌파구로서의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 바짝 몸달아 있었을 것이다. 기업의 외교적 역할은 때로 필요하지만 이로인해 혹시라도 정책이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송태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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