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님의 정신이 잃어버렸던 전통 불교의 예법에 따라 되살아났다. 7일 가야산 해인사에서는 해방 후 최고의 율사로 꼽히는 자운(慈雲·1911-1992) 스님의 탑·비 제막식과 영정 봉안식이 열렸다.율사(律師)란 계(戒)를 엄격히 지킨 스님을 칭송하는 말로 조선시대에는 두 분 밖에 없다. 자운 스님은 일제시대 흐트러졌던 청정승단의 지계(持戒)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해방후 불교계를 중흥시켰고, 1만 7,000여명의 비구·비구니·사미 등에게 계를 내린 큰 스님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스님이 열반한 지 8여년 만에 그 정신을 기리는 탑·비·영정, 영정을 봉안한 영각 등이 모습을 드러내 해인사 내 또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남게 됐다.
전국에서 모여든 자운 스님 문도들과 해인사 대중, 일반 신도 등 2,000여명이 자리를 메워 고인을 추모하는 가운데 선보인 사리탑·비 등은 근세 이후 처음으로 불교의 전통 예법대로 만들어졌다. 또한 불교가 중흥했던 신라, 고려시대의 탑·비 양식을 뼈대로 자운율사의 정신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만들어 그 업적을 기리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리탑과 비석은 해인사 일주문에서 오른쪽으로 70여㎙ 떨어진 자리에 조성됐으며 성철 스님의 사리탑과 마주하고 있다. 높이 5.7㎙인 사리탑의 탑신(塔身)은 원만자비했던 스님의 덕성을 형상화하기 위해 구형(球形)으로 만든 뒤 2개의 띠와 4개의 연꽃 잎으로 감쌌다. 상대석(上臺石)에는 인도의 우바리존자, 중국의 도선(道宣), 백제의 겸익(謙益), 그리고 자운 등 8대 율사의 모습을 그려넣었고 중대석(中臺石)과 하대석(下臺石)에는 각각 스님의 게문(偈文)과 갖가지 수인(手印)을 새겼다. 다비식 때 수습된 사리는 금, 은, 도자기, 동으로 만든 4개의 사리함에 차례로 넣어 탑 아래 봉안했다.
사리탑과 나란히 서 있는 높이 7.14㎙의 비는 화강암으로 된 귀부(龜趺)와 오석의 비신(碑身) 등으로 이뤄져 있다. 비신에는 ‘자운대율사(慈雲大律師) 원명사리탑비명(圓明舍利塔碑銘)’이란 제목 아래 스님의 행장, 조성에 동참한 대중들의 명단 등을 해서체 6,653자로 담았다.
자운문도회는 불교 전통방식을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열반에서부터 제막식에 이르는 과정을 책으로 엮어냈다. 모든 과정을 주관한 지관(智冠) 전 동국대 총장은 “고승의 유적을 기리고 불교의 문화예술 전통을 계승한다는 큰 뜻을 담았다”고 밝혔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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