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섬'어떤 충동을 느낀다면 그것은 대개 ‘마음 속에서’이다.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죽이고 싶다던가, 너무 좋아 소유하고 싶다던가. 그것이 생각 속이거나 최소한 현학적으로 표현된다면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로, 몸으로 표현될 때는 ‘엽기’라고 부른다.
‘섬’은 엽기적이다. ‘감각의 제국’개봉시 ‘섬’은 ‘집착’과 ‘도착’의 양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주목거리가 됐다. 여자 희진(서정)은 낚시터 ‘섬’에서 낮에는 커피를, 밤에는 몸을 판다. 뭍과 떨어진 섬에서는 인간의 법칙이 깨진다. 비록 그곳이 인공적으로 만든 낚시터에 불과하더라도 육지와 어느 정도 떨어진 곳이라는 이유로. 남자들은 한 여자를 돈으로 사서 번갈아 섹스를 하고, 시선을 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불륜 행각을 벌인다.
섬은 본능의 공간이다. 남자(김유석)는 아내인지 애인이지 모를 여자와 그 여자와 정사를 벌인 남자를 살해했다. 본능에 따라 살인하고, 섬으로 숨어든 그는 그러나 다른 여자의 본능의 포로가 된다. 여자는 권총 자살을 하려는 남자의 허벅지를 찔러 자살을 막았고, 낚시바늘을 삼킨 남자의 목구멍에서 하나 하나 바늘을 뽑아냈고, 섹스를 했다.
섬에 사는 여자에게 몸은 물물교환이 가능한 재화이자 본능의 지시를 받는 순수한 시종이다. 일탈과 집착이 몸으로 표현될 때 그것은 ‘엽기’이다. 남자를 찾아온 티켓다방 종업원을 죽게 만들고, 그녀를 찾으러 온 포주를 살해한 여자에게 남자는 공포심을 느낀다. 떠나려는 남자의 등을 보면서 여자는 낚시 바늘을 자신의 아랫도리에 넣어 그를 다시 결박한다. 집착에 결박당한 남자와 여자의 운명은 파국 외엔 아무것도 없다.
‘백치 아다다’처럼 말을 못하는(영화에서는 일부러 ‘안하는’) 여성이 본능적인 감성이 더 살아있다는 설정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 영화 초반 카메라는 왜 그토록 여자의 몸에 집착했을까. 그러나 섹스를 ‘애매한’ 감성의 교류가 아니라 집착을 구체화하는 물리적 행위로 드러내면서 인간의 존재를 분석하는 감독의 시선은 독특하다. 이렇게 보면 엽기는 인간 본성을 보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그것은 또 무소유의 공간이었던 자궁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일 수도 있다. 오락성★★★☆ 예술성★★★☆
박은주기자
jupe@hk.co.kr
■영화 '섬' 김기덕 감독
김기덕(40) 감독은 독특하다. 고집불통이다. 1996년 ‘악어’로 시작해 ‘야생동물보호구역’ ‘파란대문’을 거쳐 ‘섬’까지. 그는 저예산영화를 계속했고,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히 했다. “투자자가 없어서” “이번에 안되면 나도 한석규 잡으러 몇년이고 다닐 것”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사실 그의 이런 선택은 운명적이다. 그것은 그가 지향하는 영화세계와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그가 영화에서 선택하는 주제와 인물 들이 적어도 할리우드 상업 영화, 그것에 물든 한국의 기획 영화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소외와 비정상(악어), 남북문제와 이방인(야생동물보호구역), 계급의식으로 상징되는 창녀와 여대생(파란대문)은 그의 영화를 조금은 변방에 위치하게 만든다.
그들을 통해 김기덕은 현실의 왜곡된 시선에 반항하고 그 반항을 통해 본능 속에 잠재된 삶의 본모습에 접근하려 한다. 그 방식 역시 때론 섬뜩하고 전복적일 정도로 도발적이다. 스스로 “문화속국이 되는 것” 이라고 말하는 스타시스템 보다는 작가주의와 대안영화를 자처하는 그의 영화로서는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미덕은 막연한 분노의 표출이 아닌 자기 만의 방식과 전략을 가졌다는 데 있다. 그의 영화는 다분히 심리적이다. 행위들은 그의 영화의 꽉 막힌 공간들이 말해주듯 극단의 심리적 표출로 상징된다. 영화에 줄기차게 등장하는 원색의 갖가지 소도구(파란대문, 빨간 커튼, 노란 집)나 의도적으로 칠한 세트들도 같은 장치로 쓰인다.
그는 이를 ‘반추상화적 양식’이라고 했다. 그 양식이 개성이고 장점이기도 하지만 때론 주제나 심리에 접근하는 방식을 소홀히, 다짜고짜로 만들기도 한다. ‘파란대문’에서 그는 그것을 보다 상업적으로 정교하게 해보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그의 개성이 엷어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반추상적이란 불친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관객이 개입할 비약과 상상의 여지가 있다. 영화는 현실의 상세한 묘사가 아니라 상징이다”
순제작비 4억9,000만원의 ‘섬’은 그 연장선상에서 장선우 감독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인의 성적 욕망과 집착에 눈을 돌렸다. 그로서는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또 하나의 시도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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