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일대를 잇따라 덮친 산불은 동해 삼척 강릉 등 평온했던 해안도시들을 한순간에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야산 뿐아니라 도시 곳곳을 시커먼 연기가 뒤덮고 가옥들이 종이짝처럼 불에 타 넘어지는 등 격전을 치른 전쟁터를 방불케하고 있다.◆동해
○…12일 오전 9시20분 발생한 동해시 산불은 산림 500㏊와 가옥 13채를 태운 뒤 주택가 사이의 산들을 타고 시내 중심부로 번지고 있지만 강풍으로 진화가 불가능해 시민들의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동해시 전체는 매캐한 연기에 휩싸여 숨 쉬기 조차 힘들었고 연무(煙霧)로 1m앞을 보기도 어려울 정도. 불길이 타오르는 지역을 피해가려는 차량들로 시내 곳곳에는 정체현상이 빚어졌고, 연기에 가려 대낮인 데도 어두컴컴한 하늘에는 물을 실어나르는 군헬기들로 분주했다.
○…초록산 밑자락의 천곡동 ‘항고을’ 일대 소방대원과 주민들은 불길이 몰려오자 삽과 간이분무기 등을 들고 50여채 가옥을 지키기 위해 나섰지만 연기가 너무 심해 산불에 접근조차 못했다.
소방대원 박모(46)씨는 “섣부르게 진압에 나섰다가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라며 “군부대 탄약고 사수를 위해 거의 모든 헬기가 투입되는 통에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산에서 날아오는 불똥을 끄기 위해 지붕과 마당 등에 물을 끼얹어 보지만 초속 13∼21m의 서북풍이 워낙 강해 물을 삽시간에 증발시켜 버렸다. 동해시는 낮 12시30분 시 전역에 대피령을 내리고 27개 초·중등교 학생 전체를 귀가시켰고 화재지역에 시민동원령을 내려 주민들이 자구책을 강구하도록 촉구했다.
◆삼척
○…화마가 휩쓸고 간 삼척시 근덕면 궁촌1리는 전쟁터의 페허를 방불케 했다. 새카맣게 탄 집들이 통째로 주저 앉아있고, 불길에 폭발해 수십㎙씩 날아가 뒹굴고 있는 LP가스통이 지옥같던 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날 오전 불길이 잡히자 마을로 돌아온 주민 280명은 마을을 휘감아 오던 불길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흡사 폭격을 맞은 듯 변해버린 집 앞에 주저앉아 “이젠 어떻게 하느냐”며 땅을 쳤다.
불길이 슈퍼마켓을 통째로 삼켰다는 이경선(李敬善·70)씨는 “집에 물을 뿌리다 지쳐 ‘우리 집에는 오지말라’고 목이 쉬도록 외치기까지 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불길이 번지자 원덕 근덕 도계 등 삼척시내 6개 읍·면 1만2,000여세대 3만6,000여명이 11일밤과 12일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으며 50여채의 가옥이 전소됐다.
불이 울진군으로 번지면서 울진군과 삼척시 경계 7번국도 주변 야산들도 모두 타버려 온통 짙은 잿빛으로 변했고, 임원항 시가지도 눈과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와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강릉
○…12일 새벽 강릉시 홍제동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거센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동해고속도로를 넘어 홍제동과 교동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골짜기를 따라 들어선 교동의 20여채 가옥은 산불 발생 30분만에 거대한 불바다로 변했다. 불붙은 가옥에서 LP가스통이 잇달아 터져 하늘로 치솟고 강한 바람까지 불어 주민과 공무원은 물론 소방대원들도 손조차 쓰지 못했다.
주민 김순예(金順禮·78·여)씨는 “가스통 터지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깼는데 가재도구는 챙길 엄두도 못내고 몸만 겨우 빠져 나왔다”며 망연자실했다.
산불이 강풍을 타고 시내로 급속히 번지면서 강릉지원과 지청, 강릉시 제2청사 뒷산까지 불이 옮겨 붙자 비상소집된 직원들이 서류박스와 컴퓨터 등을 차에 실어 옮기느라 북새통을 이뤘다.
◆고성
○…10일 오전 6시5분께 고성군 현내면 송현리 비무장지대에서 재발한 산불은 남방한계선을 넘어 12일 밤 발화지점에서 6㎞가량 떨어진 마달리 인근까지 남하하고 있다. 군당국은 이 불이 서쪽으로 퍼지면서 큰까치봉(해발 742m)까지 접근하자 이 봉우리를 ‘저지선’삼아 산불과 ‘대치’하고 있다.
군당국은 1,730명의 병력과 헬기3대를 투입했으나 산세가 험하고 강풍이 멈추지 않자 헬기진압작전은 포기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군은 밤이 되면서 바람이 잦아들자 군용도로를 따라 병력을 배치, 산불이 지상으로 전파되는 것을 막고 있다. 고성군도 70명을 동원, 진화에 나섰지만 ‘바람’앞에서 역부족이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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