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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서울시향 '라흐마니노프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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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서울시향 '라흐마니노프 축제'

입력
2000.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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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쳤더라면 후회했을 것이다. 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서울시교향악단의 ‘라흐마니노프 축제’ 말이다. 요엘 레비가 지휘하고 러시아 신예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초예프(25)가 협연한 이날 연주는 한마디로 훌륭했다. 프로그램은 모두 라흐마니노프로, ‘바위 환상곡’, 피아노협주곡 3번과 ‘교향적 무곡’, 앙코르도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였다.요엘 레비의 마술 같은 지휘봉은 아주 잘 다듬어진 순도 높은 소리를 끌어냈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정밀하게 음악을 만들어가는 그의 솜씨는 과연 명장다운 것이었다. 최근 수년 간 서울시향이 이만큼 고급스런 소리를 들려준 적도드물 것이다.

서울시향의 저력은 특히 ‘교향적 무곡’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비단결 같은 현의 울림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인 것이었다. 서울시향이 그처럼 아름답게 노래한 적이 있던가. 꿈을 꾸는 듯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마초예프는, 굉장했다! 음악을 완전히 장악해버린 그의 연주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경탄스러웠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은 대단히 어려운 기교와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는 곡이지만, 그에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피아노를 떡 주무르듯 한다고 할까. 지휘자 정치용의 표현에 따르면 ‘라흐마니노프를 바이엘 치듯’했다. 마초예프는 두 곡의 앙코르를 선사했는데, 그중 하나는 재즈풍의 자작곡으로 ‘묘기대행진’이라 할 만큼 기교를 과시하는 곡이었다. 이 젊은이의 다재다능함이 또 한 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뛰어난 연주에 비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건조한 음향은 못내 아쉬웠다. 요엘 레비는 ‘재앙’(disaster)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많은 홀에서 연주해봤지만 이렇게 음향이 나쁜 곳은 처음”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세종문화회관의 4,000석이 넘는 대극장이나 400석의 소극장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적합하지 않다. 클래식 콘서트에 알맞는 1,000석 규모 중극장은 그래서 필요하다.

객석의 소란도 흠이 됐다. 2층, 3층의 어린 학생들이 계속 떠드는 바람에 지휘자는 신경이 곤두선 채 조용해질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했다. 각 학교는 학생들을 음악회에 보내기에 앞서 관람 예절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날 서울시향의 훌륭한 연주는 오디션 파동으로 심한 몸살을 앓는 중에 이뤄진 것이어서 더욱 뜻깊다. 지난해말 오디션에서 서울시향의 현 파트 수석 4명이 해촉됐다. 노조는 그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 3월 31일 연주회는 단원이 38명이나 빠진 채 이뤄지는 파행을 겪었다.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오케스트라가 노조와 비노조로 갈려 내분에 시달리는 이런 상황을 놓고 한 고참 단원은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이번 연주는 다행히 아무도 빠지지 않았고, 우려와 달리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줬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향이 반세기 넘게 쌓아온 전통과 자부심을 살려 전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서울시향이 지금의 진통을 극복하고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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