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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국의 스포츠 라운지] 전명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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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국의 스포츠 라운지] 전명규 감독

입력
2000.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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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쇼트트랙 신화주역 전명규감독얕은 선수층, 왜소한 체격…. 한국 쇼트트랙의 토양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구석 하나 없는 불모지다. 그럼에도 3차례의 동계올림픽에서 금7, 은1, 동3개(1992년 알베르빌 금2 동1, 94년 릴레하머 금2 동1, 98년 나가노 금3 은1 동1)의 풍성한 메달을 수확했다.

전명규(37) 한국쇼트트랙 감독. ‘동계스포츠 강국’ 한국의 명성은 그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한국체육사의 신기원은 비인기종목의 서러움도 개의치않고 ‘평범한 사람은 절대로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그의 강인한 신조가 있었기에 열릴 수가 있었다. 천금같은 휴가기간을 박사논문 준비로 바쁘게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났다.

_우리 선수들은 중국 캐나다 등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나이도 어릴 뿐만아니라 체격도 왜소합니다. 그런데도 엄청한 파워를 발휘하는데 불가사의하기 조차 합니다.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많은 훈련량과 단단한 정신무장입니다. 일례로 중국의 경우 평균신장이 165∼170㎝, 체중이 60㎏이상인데 비해 우리 선수들은 160㎝, 50㎏에 불과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극에 달할 정도의 훈련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의 훈련은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선수들 스스로의 자각입니다.

다행히 선수들이 저의 훈련방식에 진정으로 공감을 하고 따라오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훈련방식에는 체력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철제조끼 입고 빙판달리기, 다리힘을 기르기 위한 자전거훈련, 스타트 대비용인 인간고무튜브 끌기, 불암산 달리기 등 이미 알려진 것들을 포함해 20여 가지가 있습니다. ”(전감독은 경쟁국들이 국내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는 우리의 훈련방법과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기 때문에 훈련방식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_고된 훈련으로 인해 선수들과의 인간적인 갈등은 없었습니까.

“개인적으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회의를 가진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평범한 훈련으로는 세계정상까지 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선수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열심히 하는 길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선수들과의 대화는 미팅과 일지적기로 합니다. 일지는 선수들의 마음을 솔직하게 적어 일주일에 한차례씩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일지를 읽어본 뒤 칭찬 질책 사과 등 저도 의견을 솔직하게 적어보냈습니다. 그런데 미팅 100번보다는 글을 한번 주고받는 것이 유대감 강화에 더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전이경의 경우는 장문의 일지를 써내기도 했는데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_많은 주변사람들이 전감독을 가리켜 독한 사람이라고 평합니다. 본인의 원래 성격은 어떻습니까.

“저는 아주 여리고 약한 성격입니다. 한 마디로 평범합니다. 단지 목표가 설정되면 지더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어찌보면 제가 독한 게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무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지 않고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저도 주저없이 그 방법을 택하겠습니다.”

_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전이경과 김동성이 결승선을 앞두고 날들이밀기로 우승을 한 것은 우리 국민을 열광시킨 압권이었습니다. 날들이밀기는 기술의 한 종류입니까, 아니면 임기응변이었습니까.

“기술입니다. 92년 알베르빌동계올림픽에서 김기훈이 맨먼저 시도한 적이 있는데 이 때는 몸을 앞으로 꾸부리면서 날을 들이미는 것 이었습니다. 지난 번에는 몸이 뒤에 쳐져 있는 상태에서 발을 앞으로 쭉 내뻗었는데 발전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3주후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해보니 중국선수들이 결승선 근처에만 오면 다리부터 쭉쭉 뻗더군요. 우리가 기술을 개발하면 곧바로 전파되어 버립니다.”

_쇼트트랙을 개척할 초창기시절 어려움이 많이 따랐을텐데요.

“빙상에서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이 주축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배어버린 패배의식을 불식시키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딴 생각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강한 훈련밖에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김기훈 이준호 모지수 등이 초창기 멤버들이 잘 참고 따라줘 2∼3년만에 오늘의 위치로 오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일본이 강국이었던 점도 행운이었습니다. 우리와 체격조건이 비슷하다는 점이 자신감을 가지게 한 요인이었으니까요. 만약 서양선수들이 정상에 있었다면 애당초 꿈조차 꾸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_전감독의 개인생활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가족관계는 어떻습니까.

“아내(하수경·32)와는 94년 3월 스포츠TV 기자로 재직중일 때 취재차 인터뷰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현재 LG홈쇼핑(케이블채널) PD로 일하고 있는데 오하이오주립대 유학시절 88올림픽에 싱크로나이즈드 수영국가대표로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자식으로는 딸 세림(3)이 있습니다.”

_많은 날들을 선수촌과 외국에서 보내는데, 가정생활에 어려움은 없습니까.

“정확히 헤아려보지는 않았습니다만 1년에 대략 200일 이상은 집을 비웁니다. 아직까지도 집에 가면 딸애가 웬 아저씬가 싶은지 가까이 오질 않습니다. 하루정도 지나야 가까스로 곁에 옵니다. 아내도 처음에는 많이 이해를 했지만 최근들어 일선에서 물러나 좀 쉬는 게 어떠냐고 운을 띄웁니다.”

_코치시절까지 포함하면 13년동안 대표팀을 맡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계속할 생각입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저는 새해를 맞을 때마다 마지막 해라고 생각하고 임합니다. 노력하기 싫을 때가 오면 그때를 그만둘 시기로 여기고 미련없이 물러날 작정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에게 떨어지면서 지금까지 오는데 10년이 걸렸습니다. 추락은 한 순간에 일어납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 처지면 일본보다 더욱 많은 세월이 걸릴 것입니다. 새기술, 새로운 체력보강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저의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남재국기자 jk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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