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로서는 최선의 당연한 선택이었다.”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이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밀사’였다는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정·관계 인사들이 보인 반응이다. 현 여권 인사들중 그만큼 ‘DJ의 밀사’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인사도 찾기 힘들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박장관에 대한 김대통령의 신임이 어느 누구보다도 두텁고 시기를 가리지 않고 김대통령과 깊숙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여권 ‘실세’중 한 사람이라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 또 박장관의 김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김대통령과 함께 물러난다는 생각으로 남은 3년간 온 몸을 던질 것”이라는 평소 언급에서 확실히 읽을 수 있다.
박장관이 DJ 옆에서 걸어 온 지난 10년여 정치역정을 살펴 보면 김대통령이 왜 그를 이번 정상회담 협상의 ‘메신저’로 발탁했는 지 쉽게 알 수 있다. 박장관이 김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본격적으로 보필하기 시작한 때는 지난 91년. 구민주당 수석부대변인으로 처음 ‘DJ의 입’이 된 뒤 통산 8년여를 민주당 대통령직인수위와 청와대를 거치며 DJ의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이 기간 대언론관계는 물론이고 탁월한 대인관계, 뛰어난 정보수집력과 상황 판단력 등을 발휘하며 확실한 DJ의 1급 정치참모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5월 개각을 통해 청와대에서 물러난 뒤에도 김대통령은 1주일에 서너차례씩 그를 불러 갖가지 막후의 임무를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정상회담 ‘특사’ 역할도 주종(主從)관계를 떠난 이같은 두 사람사이의 개인적·인간적 신뢰관계에서 가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부에선 지난 98년 2월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박장관이 정부 최고위인사로 금강산을 방문했던 게 대북관계에 박장관을 활용하기 위한 김대통령의 심모원려였다는 견해도 나온다.
72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자수성가한 뒤 귀국, 정계에 입문해 DJ의 최측근으로 자리잡은 박장관이 이번 특사임무 완수로 DJ 임기 후반기의 가장 확실한 ‘스타’로 새삼 부상했다는데 이론이 없을 것 같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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