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의 베를린 선언 이후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다중적이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대화 환경이 아직 조성되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빗장은 연 듯 했지만 대문까지 활짝 열지는 않았던 것.북한은 94년 7월25일부터 27일까지로 예정됐던 남북 정상회담이 김일성주석의 돌연한 사망으로 무산되자 ‘정상회담을 연기한다’고 남측에 전달, 원칙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여는데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베를린 선언후 첫 공식 반응은 지난달 15일 나왔다. 노동신문은 “남조선 당국이 행동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다면 남북한 당국간 대화와 접촉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노동신문은 국가보안법 철폐 등 기존의 선행 조건을 여전히 내걸었다.
지난달 28일에는 주창준(朱昌駿)주중 북한대사가 “국정원 해체, 국가보안법 철폐가 없는 남북당국자 회담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고 이달 5일에는 백남순(白南淳)북한 외무상이 “남북 대화 제의는 환영하지만 지금은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조건과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다”고 선행 조건을 거듭 상기시켰다.
회담 개최 합의 하루 전인 7일에도 조선중앙통신은 “남조선 당국은 행동으로 북남관계 개선 의지를 밝힐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사들에게서는 잇따라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됐다. 지난달 16일부터 25일까지 북한을 방문했던 케네스 퀴노네스 전 미국무부 북한담당관은 “북한의 한 관리가 베를린 선언에 대해 남한측의 진의를 물어보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 이탈리아 외무부는 람베르토 디니 외무장관의 방북(3월28-29일) 결과를 우리측에 설명하면서 “(북한이) 베를린 선언에 명시적인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희망적인 관측을 전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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