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생전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일 것 같습니다”남북정상회담 합의소식이 전해진 10일 실향민들은 “제발 이번만은 양쪽 다 실망시키지 말아달라”며 간절하게 호소했다. 북한체제에 반대해 한국으로 탈출한 탈북자들도 한 목소리로 “이번 정상회담은 통일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며 고향땅을 다시 밟을 기대에 부풀었다.
■실향민 표정
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위원회에는 오전 내내 정상회담의 성사가능성을 묻거나 이번에는 반드시 ‘생사확인’ ‘서신왕래’ ‘이산가족상봉’‘고향 방문’이 이뤄져야 한다는 실향민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1985년 고향방문 때처럼 방문자를 정부에서 결정하면 안되고 나이 순으로 해야 한다”는 등 때이른 요구가 밀려들기도 했다.
평남 진남포 출신 최선일(崔善一·74·여)씨는 “23세때 월남해서 50년을 남쪽에서 살았지만 어찌 ‘태를 묻은’ 고향을 잊을 수 있겠느냐”며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실향 1세대들은 그저 고향을 그리는 수구초심(首丘初心)속에서 산다”고 말했다.
전 홍익대 미대교수 황용엽(黃用燁·70)씨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인 만큼 반세기동안 고향을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지세운 실향민들의 아픔을 반드시 달래주기 바란다”고 간절히 말했다.
“3년전 북에 남았던 어머니가 오래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며칠밤을 눈물로 지새웠다”는 황씨는 죽기전에 고향에 묻힌 어머니 묘소를 찾아뵙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북5도위원회 임갑수(林甲洙·53) 함경남도 사무총장은 “통일은 800만 이북도민 뿐만 아니라 민족의 소망”이라며 “일단 남북이 만나는 것이 급선무로 이번 정상회담이 통일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북5도청년총연합회 함무범(咸武範·47)회장은 “7.4 남북 공동성명 발표 때도 실향민들은 몇년 안에 통일이 될 것처럼 기대했었다”며 “정상회담이 최종 성사되는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추진해달라”고 당부했다.
■탈북자 반응
1983년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李雄坪·49·공군대학 교수)씨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빨리 성사될 줄은 몰랐다”며 “장소가 제3국이나 판문점이 아니라 북한의 심장부인 평양이라니 더욱 놀랍다”고 환영했다.
이씨는 또 “북한 주민들은 김대통령이 위험을 감수하고 평양에 온다는 사실에 우리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며 “통일의 한줄기 빛을 보는 느낌”이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김일성대 교수로 재직하다 1994년 탈북한 조명철(趙明哲·59·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씨는 적십자 회담 등 단명한 남북간 교류를 예로 들며 “최고 집권자에 권력이 집중된 현실에서 하위급 회담의 결실은 오래가지를 못한다”고 정상회담의 의의를 설명했다.
북한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모임인 ‘탈북자동지회’ 관계자는 “아직 공식입장을 밝힐 때가 아니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면서도 “다시 북녘 땅을 밟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북한출신 장기수
북한출신 비전향 장기수들도 남북정상회담을 반겼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만남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접한 7명의 장기수들은 정부발표가 방송되는 동안 꼼짝도 않고 TV 화면을 지켜 보았다.
30년 6개월을 복역하고 1990년 출소한 김석형(金錫炯·87)씨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평북 박천군 고향에 돌아갈 날이 가까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만남의 집 자원봉사자는 “평소 별 얘기 없던 분들이 오늘은 점심상을 마주하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고 전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