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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노트] 바둑계에 부는 '바짓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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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노트] 바둑계에 부는 '바짓바람'

입력
2000.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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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바둑계에서는 17세 ‘비금도 소년’ 이세돌 3단의 맹활약에 스포트 라이트가 집중되고 있다. 형 이상훈 3단(25)과 함께 서해의 외딴 섬 비금도 출신 형제 기사로 유명한 이세돌이 올들어 22연승을 달리면서 7개 기전 본선 연속 진출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7개 기전 본선 진출이란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등 최강 그룹을 제외하곤 다른 어떤 기사도 넘보지 못할 만큼 대단한 기록이다.

한데 이세돌의 활약상을 지켜 보면서 그의 천재성에 대한 감탄과 함께 아들의 재질을 정확히 찾아내 훌륭하게 꽃피운 아버지 이수오씨의 안목에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기원은 커녕 마을 전체에 변변한 바둑판 몇 개 없는 바둑 오지에서 자식들에게 손수 바둑을 가르쳤고, 두 아들을 어린 나이에 단신으로 서울에 유학을 보내 결국 프로 기사로 만든 것이다.

어떻게 그처럼 외딴 곳에서 자식들에게 바둑을 가르칠 생각을 했을까. 더욱이 서해 고도에서 멀리 바다 건너 서울까지 바둑 유학을 보내기로 결심을 했던 것일까. 정말 대단한 열성이요, 결단이 아닐 수 없다.

하기야 한국 바둑계는 전통적으로 할아버지나 아버지들의 ‘바짓바람’이 거센 동네다. 현대 바둑의 개척자인 조남철 선생의 선친 조봉구씨가 일찍이 큰 아들에게는 학문을, 둘째에게는 사업을, 막내에게는 바둑을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과감히 일본 유학을 보낸 것은 당시로서 정말 대단한 용단이 아닐 수 없다.

그같은 정열은 다음 대에도 이어져 조남철의 형이자 조치훈의 아버지인 조남석씨는 자식이 우리말도 채 익히기 전인 6살 때 홀홀단신으로 일본에 보냈으며, 자식만으로도 모자라 최규병 이성재 등 외손자들까지 기재만 있다 싶으면 맹훈련을 시켜 모두 쟁쟁한 프로기사로 키워 냈다. 이 밖에 조훈현의 아버지 역시 아들의 대성을 위해 목포에서 잘 나가던 지물포를 정리해서 무작정 상경을 하더니 역시 아홉 살 때 일본으로 보냈으며 유창혁이나 이창호 등도 모두 아버지의 열성 속에서 자라났다.

유창혁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회초리가 무서워서 바둑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말하고 있고 이창호를 발굴한 할아버지의 열성이나 부친 이재룡씨의 10여년간에 걸친 ‘그림자 응원’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그 밖에 최명훈 목진석 유재형 김만수 박영훈에 이르기까지 요즘 맹활약을 하고 있는 신예기사들의 뒤에는 어김없이 열성 아버지들이 숨어 있다. 정말 대단한 ‘바짓바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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