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한국시리즈는 역대 한국시리즈중 가장 싱겁게 끝난 이벤트였다. LG가 파죽의 4연승. 삼성은 힘 한번 못쓰고 정상의 자리를 LG에게 넘겨줬다. 당시 LG감독 백인천씨는 우승후일담을 털어놓으면서 흥미로운 얘기를 하나 꺼냈다. 절정의 타격을 자랑하던 홈런타자 이만수(삼성)에 대한 것이었다.3차전에서 LG의 구원투수 정삼흠은 9회말에 이만수에게 투런홈런을 허용했다. 물론 경기는 LG가 3-2로 이겼다. 이만수에게 홈런을 맞은 게 아니라 만들어줬다는 게 백인천감독의 얘기였다. 숨은 뜻은 이랬다.
백감독은 정삼흠에게 홈런을 맞아도 좋다는 암묵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홈런을 맞아주라는 것은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얘기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백감독의 심모원려(深謀遠慮)의 복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만수가 포스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수읽기가 편하기 때문이었다는 게 백감독의 설명이었다. 홈런을 치면 삼성도 계속 이만수를 주전포수로 기용할 것이라는 점을 간파했던 것이다. 백보전진을 위한 오십보 후퇴였던 셈이었다.
흔히 현대야구는 포수-투수-유격수-중견수로 이어지는 센터라인이 강해야 강팀이 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만큼 포수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반증이다. 예전에는 포수중 슬러거들이 많았다. 포수의 인사이드웍보다는 타격을 중시했던 탓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포수를 평가하는 잣대중 첫째는 수비능력이다. 수없이 많은 위기상황을 헤쳐나가려면 포수가 안방살림을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수가 투수에게 사인하나 잘못냈다가는 경기를 망치기 십상이다. 한 가정의 화목여부는 안방마님의 내조에 달려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런 점에서 지난 시즌을 끝으로 FA(자유계약선수)자격을 획득, 삼성으로 이적한 김동수는 주목의 대상이다. 한국시리즈정상에 서보지 못한 삼성은 백인천감독의 ‘숨은 뜻’을 뼈저리게 느껴 거액을 들여 김동수를 데려왔다. 시즌초지만 김동수효험이 나타나고 있다.
9일 신인 이용훈이 데뷔 첫 승을 올린후 “역시 동수형”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제 제대로 된 조타수를 찾은 삼성이 올 시즌 어떻게 거센 풍랑을 헤쳐갈지 김동수를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같다.
정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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