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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그린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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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의 골프세상] 그린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입력
2000.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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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혈질의 P가 만능 스포츠맨 친구의 간곡한 권유에 골프채를 잡았다. 학창시절부터 못 하는 운동이 없었던 친구는 P에게 “수많은 스포츠를 해봤지만 골프만한 것은 없더라. 지금 내 말을 안들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며 중고골프채를 쥐어주는 바람에 친구가 시키는대로 골프연습을 했다.레슨프로의 지도를 받으며 아침 저녁으로 연습을 했다. 뜻대로 안되고 의외로 섬세하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두 달동안 필드 나갈 생각하지 말라는 친구의 충고를 잘 실천했다. 그러는 사이 그의 머리 속에는 골프가 환상의 스포츠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골프 연습장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골프예찬론은 골프 문외한인 P에게 ‘골프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운동’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2개월 뒤 설레는 가슴으로 친구를 따라 필드에 나갔다. 녹색으로 에워싸인 첫 홀 티잉그라운드에 서기 전까지만 해도 P는 골프의 환상이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길고 긴 하루가 흘렀다. 18홀을 빠져나왔을 때 P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연습장에서 경험했던 샷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구력이 짧다고 하지만 해도 너무 했다.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 분노가 뒤범벅이 되어 머리는 거의 빈사지경에 이르렀고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환상이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구력 5년이 지난 P는 여전히 환상을 갖고 골프장을 향하고 있다. 늘 환상을 갖고 필드에 나섰다가 절망에 빠지면서도 결코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분노, 모멸, 욕심, 질투, 속임수, 위선, 유혹 등 인간의 온갖 못된 것들만 우글거리는 소굴이 골프장이란 것을 깨닫고 있지만 숨을 거둘 때까지 골프 환상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물라 나스루딘이 많은 돈을 저축해 부자가 되었다. 나스루딘은 한 친구의 제안으로 패션쇼를 보러갔다. 패션쇼가 끝난 뒤 친구는 나스루딘에게 “패션쇼가 마음에 들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나스루딘은 대답했다. “그건 완전히 사기였어!”“왜?”“늘씬한 여자를 보여주길래 사겠다고 했더니 여자가 아니라 옷만 주잖아?”(이드리스 샤흐 지음 ‘삶의 사막을 가볍게 건너는 어떤 바보의 별난 지혜’중에서)

비싼 골프채를 들고 골프장에만 나가면 골프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골퍼는 나스루딘처럼 사기당한 기분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방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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