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기전까지는 나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한국은 외국인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얘기를 자주 했다. 한국인이 외국인들을 얼마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지를 자랑했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 모든 외국인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 일이 있고 난 후에야 깨달았다.2주전 김포공항에서의 일이었다. 미국에서 남자친구가 온다기에 마중을 나갔다. 그와 만난 뒤 몇초나 지났을까. 한 노인이 혀를 끌끌차며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댔다. 너무 놀라 황급히 공항을 빠져 나왔는데 공항밖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 온 후 익숙해진 호기심어린 눈빛이 아니라 뭔가 더럽고 경멸적인 것을 보는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날따라 택시도 잡을 수 없었고, 백화점에 쇼핑을 가도 점원들이 물어보는 말에만 간단히 대답할 뿐 잠시 구경이라도 하려면 “영업을 해야하니 비켜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 이유가 뭔지 곰곰히 따져보니 내 남자친구가 흑인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스스로 인종차별국가라고 인정하는 미국에서도 이런 일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자랑했던 한국에서 이런 일을 당하다니.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버드대 우등졸업에 스탠포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 친구가 단지 검은 피부색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 친구가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니 가슴이 무척 아팠다.
이 일에 대해 한국친구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댔다. 한국인의 흑인에 대한 감정은 주한미군 흑인 병사때문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고, LA폭동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한국인은 피부색이 다른 사람끼리의 커플을 이상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설명하는 친구도 있었다.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모든 한국사람들이 내 친구를 멸시하듯이 대한 것은 아니다. 내 직장동료들은 너무 따뜻하게 대해줘서 나는 지금도 고마워 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모든 분야에서‘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다. 세계화는 선택사항이 아닌 생존을 위한 키워드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 속에서 이미 당당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흑인을 차별하는 의식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세계 속의 한국’은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캐롤라인 셔먼·한국 금융연구원·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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