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미래에셋사장유엔은 4일 아프리카 4개 국가들의 에이즈예방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부부가 창설한 기금에서 5년에 걸쳐 5,700만 달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 자금이 보츠와나, 가나, 우간다, 탄자니아의 25세 이하 젊은이들을 에이즈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는데 사용될 것”이라면서 “아프리카 수십만명의 젊은 남녀들이 목숨을 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AP=4월4일
돈은 벌기 위해 쓰는 것인가, 쓰기 위해 버는 것인가. 돈을 벌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대답할 수 없을 질문에 박현주(朴炫柱·42) 미래에셋 사장은 “벌기 위해 쓰고, 쓰기 위해 번다”고 말한다.
‘증권시장의 귀재’‘뮤추얼 펀드의 개척자’라는 별명과 함께 이미 수십번 지면과 방송에 등장, 유명해진 그는 어느 신문에서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되기보다는 한국 최고의 기부자가 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한국부자가 그런 말을 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래서 그의 ‘진의’를 알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박현주를 띄우는 기사’라면 인터뷰를 안하겠다고 말했다. 띄워지고 아니고는 독자에게 달린 것이기 때문에 ‘그러마’고 답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의 기부행위는 윈-윈 사회를 위한 것.’
_왜 ‘한국 최고의 부자가 아닌 기부자’가 되려 하나. 우리나라 부자가 내놓고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최고기부자가 되겠다는 건 말 그대로 사회에 가장 기부를 많이 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일을 사회사업이나 자선사업이라고 하지는 말아달라. 나는 사회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기업가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실천하는 중이다.”
_무슨 뜻이냐. 이 글을 읽을 200만 한국일보독자가 더 이해하기 쉽게 다시 말해달라.
“우리 사회는 부를 창출한 사람에 대해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건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만이 성공의 바탕이라고 생각해서 생긴 문제다.
그래서 우리나라 자본주의에 그늘이 생겨났다. 알다시피 IMF이후 이 그늘이 더 짙어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요즘엔 1, 2등에만 모든 것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1, 2등과 함께 7등 8등, …이 그들 뒤에 죽 늘어서 있을 때보다 불평과 불만이 훨씬 더 많아진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늘에 있는 사람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만일에 다시 경제가 나빠져서 서울역 같은 곳에 수십만명의 노숙자가 생겨난다면 우리나라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을까, 나의 성공이 계속될 수 있을까. 기업가의 기부는 문화적 행위가 아니라 기업의 일상적 활동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구성원 모두가 덕을 보는 ‘윈-윈 사회’가”될 수 있다. (그는 이 말끝에 돈을 번 사람들만 다루는 언론의 반성을 촉구했다. 성공사례는 다른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는 되겠지만 성공한 뒤 보람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성공한 사람 가운데 망할 수 있는 사람도 많은데 성공한 것만 써서는 안된다는 말이었다.)
-결국 당신의 기부행위는 다시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뜻인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사회사업가로 불려서는 안된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목적이야 같지만 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사업가는 아니다. 진정한 사회사업가는 아무런 생각없이 베푸는 사람들인데 나는 아직 그 정도까지 못갔다.
나를 그렇게 부른다면 그분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 된다. 나는 단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부문화를 형성하려는 것 뿐이다.”(그는 실제 신흥부자로 떠오른 몇몇 벤처사업가들을 설득, 나름대로 기금을 출연토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_최고의 기부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또 무얼 할 것인가.
“지난달 31일 75억원을 들여 ‘박현주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불우청소년을 돕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울지는 모른다. 재단이사장으로 모신 변형윤 전 서울대 교수님께 다 맡겼다.
나는 돈을 만들라면 만들겠지만 재단운영에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재단이사진에서도 빠졌다.”(그가 사회재단을 만들 거라는 보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75억원을 출연한 재단이 출범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실 기자는 ‘그가 말로만 최고기부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추궁(?)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가 재단출범 사실을 그 자리서 처음 듣게 되었다. 75억원은 도대체 얼마인가. 월 200만원짜리 월급쟁이가 300년 이상 일하면서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돈이다.
그런 돈을 그는 ‘불우청소년’을 돕기 위해 내놓았다. 물론 돈이 있어서겠지만 그의 회사보다 순익과 외형이 비교도 안될 만큼 큰 국내 최대의 S그룹이 지난해 같은 목적에 쓰기 위해 내놓겠다고 밝힌 돈이 100억원이었다.
그는 내년중 기금을 100억원으로, 5년 내에 1,000억원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_ 당신은 얼마나 부자인가. 75억원을 쾌척할 능력이 되는가.
“내 재산은 정확치는 않지만 1,000억원은 넘을 거다. 나는 기업이익의 5% 정도는 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고의 기부자인 빌 게이츠는 아마 2%를 출연하고 있을 것이다.
올해 75억원을 낸 것도 작년 이익이 1,500억원 정도 되기 때문이다. 1,000억원을 출연하려면 2조원은 벌어야 한다. 아마 5년은 열심히 벌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벌기 위해 쓰지만 쓰기 위해서는 벌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올해 출연한 75억원은 회사돈이지만 사실은 그의 돈이다. 회사에 받기로 된 성과급 액수만큼을 출연한 것인데 돈을 받은 후 출연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하므로 회사에서 낸 형식으로 처리한 것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회사 이익에서도 많은 액수가 출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돈을 출연하면 이익이 줄어들어 종업원이나 주주들이 반발할 텐데.
“물론이다. 그래서 회사를 더 키운 후에 기부를 하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나 그건 기존 재벌들의 논리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모든 것을 ‘회사를 키운 후’로 미뤘다. 그러는 사이 가진 자와 안 가진 자의 골이 깊어졌다.
이익 5% 정도를 기부한다 해서 회사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종업원들의 충성심을 강화하고, 고객에 대한 기업이미지를 향상시킨다. 회사가 더욱 성장하는 것이다. 종업원과 주주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끝에 설득시켰다.”
-자꾸 그렇게 행동하고 말하면 재벌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도 있겠다.
“사실 크지도 않은 회사가 왜 건방을 떠느냐는 경고가 없지 않았다. 그 때마다 나는 ‘사회발전이 되려면 이런 인식변화가 있어야 한다. 기업의 기부는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이익이 돌아오는, 이기적 행위다’고 맞받아친다.”
_지금 증권시장은 아주 안 좋다. 이래서야 2조원을 벌 수 있을까.
“미래에셋은 이제 어느 선을 넘은 회사다. 1인당 자기자본이 15억원 정도 되는데 1년에 10% 이익을 내면 1억5,000만원은 된다. 하지만 1인당 코스트는 그 정도가 안된다. 크게 실수하지 않으면 이익이 나는 구조가 됐다는 뜻이다.”
-불우이웃돕기라는 게 사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시각도 있다. 고기를 주기보다 고기잡는 그물을 주는 것이 낫지 않은가.
“백 번 맞는 말이다. 이사장님을 비롯 재단이 그런 방향으로 기금을 운영할 것으로 기대한다. 재단출연금 말고 돈이 더 생긴다면 불우청소년들에게 컴퓨터를 나눠주고 싶다. 현금을 주면 엉뚱한 데 쓸 수 있지만 컴퓨터를 주면 그 중에서 빌 게이츠 같은 천재가 나올 수있을 거라고 본다.”
_‘최고의 기부자’로 알려지면 개인적으로 도와달라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텐데.
“벌써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휴대폰이나 집으로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돕는 건 지금 할 일이 아니다. 끝도 한도 없을 수 있고, 본말이 전도될 수도 있다. 가슴 아플 때가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돕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다.”
**아래 E매일주소로 연락하시면 지면 사정상 다 싣지못한 대담내용을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기부의 즐거움과 돈버는 방법
그는 기부는 기업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어머니로부터 기부의 즐거움을 배웠다. 그의 어머니 김유외(金遺外·75)씨는 아무 조건없이 남을 도우면서 살고 있다. 오래 전부터 매년 5,000만원에서 1억원을 내놓고 있다.
그의 고향인 광주 언저리에는 그의 어머니의 덕을 기리기 위한 송덕비도 서 있다. 어머니가 낸 돈으로 장학재단도 설립됐다. 그의 어머니가 남을 돕는 동기는 단순하다. 교육수준이 높지 않은 어머니는 종교를 가지면서 나누고 사는 삶을 배우게 된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임대수입이 좀 있으며 아버지는 그가 고등학교 1학년때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남을 돕는 것만 가르치지 않았다. 이재도 가르쳤다. 2남2녀중 둘째인 그가 증권업의 귀재가 된 것은 어머니 덕분이다. “대학때 어머니는 내가 1년 쓸 돈을 한 번에 주셨다. 중간에 돈이 떨어져도 도와주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1학년때부터 내 돈을 안전하게 관리해줄 단자사와 증권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보니 남보다 일찍 증권을 알게 되었다. 대학 졸업한 해에 투자자문을 하면 돈을 벌겠다 싶어 내외증권연구소라는 걸 차렸다. 요즘의 투자자문회사인데 근거법이 없어 불법영업이라는 말을 듣곤 곧 때려치우고 증권회사에 들어갔다.”
증권사 입사 후 그는 승승장구의 연속을 걸어왔다. 그가 세운 기록들이 이를 말해준다. 그가 증권업에 투신한 1980년대 말만 해도 증권사 지점장은 근무연수가 20년 안팎은 되어야만 가능했다.
그는 50대 이상 지점장이 수두룩할 때 33살의 나이로 증권사 지점장을 맡았다. 입사 4년6개월째였다. 30대 지점장은 그가 국내 처음이다. 이때부터 그는 연간 성과급으로 7억-8억원을 받았다. 그는 증권에서 성공한 비결은 ‘한발 앞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돈이 어디로 흐르는가를 알았기 때문에 돈을 벌었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그는 이제 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 약력
광주일고 졸업(1977)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1983)
동양증권 입사(1986)
동원증권 중앙지점장(1991·전국 최연소 지점장)
동원증권 강남본부장(1995·전국 최연소 임원)
미래에셋 벤처캐피털 설립(1997)
미래에셋자산운용(주) 설립(1997-현재)
한국최초 뮤추얼펀드(박현주 1호) 발매(1998)
편집국부국장 soong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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