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최악의 산불 피해를 보았던 강원도 고성 등지에서 또다시 큰불이 나 산림 수천ha가 탔다. 주택 수백채가 타고 주민 1만여명이 대피한 가운데, 송전선로가 차단되는 바람에 울진 원전까지 가동이 한때 중단됐다.강풍을 타고 불길이 맹렬한 기세로 번지는 광경은 지켜보기가 섬뜩할 정도였다. “전쟁이 나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란 현지 주민의 절규가 가슴에 와닿는다.
수십년만이라는 가축역병이 돌고 황사 또한 유난한 가운데 산불마저 빈발하니, 이게 웬 재난인가 싶다.
그러나 산불만은 건조한 날씨 등을 탓하며 자연재해로 돌릴 일이 결코 아니다. 해마다 이맘 때 건조주의보가 한두달씩 지속되는 것이 상례이고, 산불의 원인도 실화가 70%를 넘는다.
등산객과 주민들이 불을 함부로 다뤄 일어나는 인재(人災)가 많은 것이다. 따라서 충분한 비가 올 때까지 산불피해가 계속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와 국민 모두가 비상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고성 산불은 4년 전과 같이 군부대에서 발화했다는 주장이 있고 보면, 재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병폐가 새삼 개탄스럽다. 늘 그렇듯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줄도 모르는’ 우리 사회의 재난 불감증이 근본문제인 것이다.
올들어 전국에서 일어난 산불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배나 되는 것도 날씨탓만은 아닐 것이다. 선거에 모두 정신이 팔려, 행정당국과 주민 가릴 것없이 산불예방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것이 엄청난 재난을 불렀다고 본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주요 등산로를 폐쇄하고, 불씨 지참 금지 등을 어기거나 산불을 내면 엄하게 처벌한다는, 뻔한 조치다. 또 피해복구 자금을 지원하고 지방세를 감면하는 등의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산불예방에 소홀한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 당연한 대책이지만, 그나마 선거를 앞두고 있어 ‘사후약방문’을 서둘러 내놓은 게 아니냐는 비아냥을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정도 대책으로 당장 올봄 건조기가 지날 때까지 산불피해가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큰 산불이 나면 자리를 내놓아야 하던 임명제 때와 달라서 산불예방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라는 생각이다.
한번 피해가 나면 복원에 100년이 걸린다는 산불을 막는데 노력과 대응을 게을리하는 자치단체장이 있을 수가 있는가. 그들이 최선을 다하게 하고, 그런 다음 문책하는 방안을 당장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앙정부와 산림당국부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산불 비상태세를 단단히 갖춰야 할 것이다. 재난이 자꾸 겹치면 민심이 어지러워진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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