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 소·돼지값은 폭락해도 소비자 가격은 제자리.’구제역 파동 이후 소·돼지고기의 산지·도매가격이 연일 급락하는 가운데 유독 소매가격만 제자리 걸음을 거듭, 축산농가와 시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농림부는 중간상인들이 농간을 부려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난이 높아지자 뒤늦게 정육업자 등 중간상에 대한 제재조치에 나섰다.
9일 농림부와 축산업계에 따르면 산지 돼지(100㎏ 1마리) 가격은 구제역 파동 직전인 지난달 24일 18만8,000원에서 31일 15만3,000원, 8일에는 14만1,000원으로 보름만에 25%나 폭락했고 돼지고기 도매가격(지육 1㎏기준)도 2,450원에서 2.061원으로 16% 이상 떨어졌다. 그러나 소매가격(정육 500g 기준)은 3,925원에서 3,780원으로 불과 4%만 하락, 비정상적인 하방경직성을 보였다.
쇠고기 도매가격(1㎏기준)도 24일 9,735원에서 8일 8,815원으로 10% 하락했지만 소매가격(500g 기준)은 9,035원에서 8,450원으로 7% 하락에 그쳤다.
더구나 구제역 확산을 우려한 농민들이 산지수매인들에게 돼지를 덤핑가에 무더기로 내다팔고 있어 실제 산지가와 소매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 상태다. 서울 회현동 W정육점 주인은 “가락시장 공판장의 돼지고기(1㎏) 가격은 3,300원에서 2,600원으로 20% 내렸지만 소매가는 7%만 인하했다”며 “가격이 언제 다시 오를지 모르는데 즉시 값을 내릴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백화점과 대형매장들도 구제역 파동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 서울 S백화점은 “구제역과 상관없는 청정농장에서 공급한 돼지고기”라며 삼겹살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있다. 축협중앙회도 구제역 파동 이후 축산물소비캠페인과는 별도로 수입육 판매를 계속해 빈축을 사고 있다.
시민과 축산농민들은 “출하량이 급증하고 소비는 줄어드는데도 값이 안떨어지는 것은 중간상이 폭리를 위해 농간을 부리는 것”이라고 집중 성토했다.
서울 구로동에 사는 조모(60·여)씨는 “구제역으로 고기값이 떨어졌다는데 실제로는 값이 오히려 오른 경우도 있다”며 “육류소비캠페인을 아무리 해봐야 값이 안내리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했고 주부 이모(36·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씨도 “중간상의 폭리에 힘없는 소비자와 농민만 피해를 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농림부 구제역 실무위원회는 소매가가 구제역 파동 2주일이 지나도록 떨어지지 않자 9일 뒤늦게 정육점 단체인 축산기협중앙회에 돼지고기 판매가를 대폭 인하할 것을 요청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축산물 소비를 촉진하려면 우선 소비자가격이 대폭 인하돼야 하는데 중간상들이 이를 교묘히 가로막고 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적정가로 인하하지 않을 경우 세무조사 등 법적·행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제재 방침을 밝혔다.
YMCA 등 소비자단체들은 “구제역 파동을 조속히 진정시키고 축산농가를 살리기 위해서는 중간상의 고질적인 얌체상혼을 근절하고 왜곡된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정부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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