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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탯줄로 암정복 꿈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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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탯줄로 암정복 꿈꿔요

입력
2000.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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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스템, 탯줄서 조혈모세포 뽑아 암 치료골수이식은 백혈병 환자를 위한 치료법? 맞는 말이다. 하지만 100% 정확하진 않다. 사람 뼈 속의 골수에는 피를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들어 있다. 골수이식은 환자의 병든 조혈모세포를 건강한 기증자의 조혈모세포로 바꿔주는 것.

골수이식의 적용범위는 광범위하다. 혈액암뿐 아니라 일반 암과 면역결핍성질환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유방암 환자가 항암화학요법이나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암세포는 물론 조혈모세포(造血母細胞·피를 만드는 원시세포)도 파괴된다.

상당수 암환자가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골수에서 미리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뽑아놨다가 항암치료 후 투여하면 생명을 건질 수 있다.

그런데 골수 대신 분만할 때 버려지는 탯줄(제대혈·臍帶血)에서 조혈모세포를 뽑아내 암퇴치에 이용하는 생명공학벤처기업이 등장했다. ㈜히스토스템(대표 김태환). 가톨릭의대 미생물학교실 한 훈(46·가톨릭조혈모세포 정보은행장)교수 등 박사급 3명과 석사급 5명이 연구분야를 전담하고 있다.

현재 백혈병 치료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여의도성모병원 조혈모세포이식센터(소장 김춘추)와 협력해 조혈모세포 이식기술을 생명공학 분야로 연결한다는 계획.

탯줄을 이용한 조혈모세포이식술은 1988년 프랑스에서 처음 시도된 이후 세계적으로 2,000여건이 이뤄졌다. 국내의 경우 아직 걸음마단계로 지금까지 겨우 16건이 시행됐다.

이 중 한 훈교수팀이 시도한 게 12건. 1명이 죽고 1명이 재발해 성공률은 83% 정도. 골수이식의 성공률 50%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이다.

제대혈이식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골수이식과 달리 조직적합성(HLA)검사에서 6개의 항원 중 최소 3개 이상만 맞으면 이식이 가능하고 채취가 간단하다. 냉동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녹여쓸 수 있고 이식에 따른 부작용도 거의 없다.

제대혈이나 골수를 이식하려면 HLA형이 일치해야 한다. 골수이식의 경우 비혈연간에 HLA형이 일치할 확률은 2만명 중 1명꼴. 하지만 제대혈은 3,000명 중 1명꼴로 확률이 7배나 높다.

히스토스템은 최첨단 냉동보관 기술과 설비를 도입, 탯줄의 조혈모세포를 냉동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제공하는 ‘제대혈가족은행’을 운영중이다. 보관료는 5년까지 무료이고 그 후 10년까지는 연 10만원을 내면 된다.

10년이 넘으면 타인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이 따른다. 현재 1,700명의 제대혈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2,500명)에 거의 근접하는 수준이다.

자녀가 태어났을 때 탯줄에서 조혈모세포를 뽑아 보관해 놓으면 백혈병에 걸려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이런 제대혈가족은행이 보편화해 있다. 백혈병, 뇌종양, 유방암이나 골수이식이 필요한 질환을 경험한 환자 및 그 가족을 위한 생물학적 보험인 셈이다.

단점도 있다. 제대혈에서 나오는 조혈모세포의 양이 적어 어른에게 쓰기엔 다소 모자라고 미성숙세포여서 면역력도 떨어진다. 이 때문에 지금은 10세 미만의 소아에게 주로 적용된다. 한교수는 “이식대상자의 체중이 70㎏이면 골수에서 약 1,000㏄의 혈액(조혈모세포는 1%)이 필요하다”며 “제대혈에서는 이 정도의 조혈모세포를 채취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히스토스템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통한 조혈모세포 배양과 유전적 성질이 비슷한 여러 사람의 제대혈을 한 환자에게 이식하는 기술을 집중 개발하고 있다. 조혈모세포의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조혈모세포는 아직 미분화한 상태이기 때문에 외부조건만 바꿔주면 피부를 만드는 세포, 연골을 만드는 세포, 신경세포 등으로 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관절염이나 치매, 파킨슨병과 같은 난치병을 정복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조혈모세포에 유전자 조작을 가하면 혈소판, 임파구 등 특정 세포로 분화시킬 수도 있다. 이런 기술이 개발되면 헌혈의 개념이 바뀌게 된다. 필요한 혈액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혈액공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교수는 “조혈모세포 배양기술과 HLA검사의 정확도에 있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자부한다”며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생명공학기업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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