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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 못할 일] 소설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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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 못할 일] 소설가 김주영

입력
2000.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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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을 앞둔 시기였다. 경북 청송군 진보농고 에 다니던 나는 학자금 때문에, 경북 칠곡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찾아가고 있었다.학교에 납부할 수업료나 기성회비가 밀려있는 궁핍한 형편이었으니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는 버스요금조차 빠듯해서 네 시간이나 걸리는 목적지까지 도착할동안 점심 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고, 군것질도 할 수 없는 딱한 형편이었다.

평소 배부르도록 먹지 못했으니, 긴 여정 동안 좌석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여행한다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팔팔한 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빈 좌석이 있다해서 함부로 차지할 수 없었다. 네 시간이나 되는 그 지루하고 고통스런 여정동안 줄곧 운전석 바로 뒤에 설치된 쇠기둥을 붙잡고 뒤뚱거리는 몸을 가눌 수 밖에 없었다.

출발한 버스가 한시간 반만에 안동에 도착했고, 많은 승객들이 버스 안을 메웠다. 버스는 찌는듯한 더위 속을 뚫고 상주로 출발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바로 등 뒤에 한 여학생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교복에 붙인 배지로 보아 안동사범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한문으로 디자인된 네모 크기의 사자(師字)는 전학년이 똑 같았으나, 색깔로 학년 차를 표시하고있었기에 학년을 당장 알아챌 수 있었다.

안동을 떠난 버스가 상주에 도착했다. 정거장에 도착한 이 완행버스는 좀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 한 시간 동안이나 새로운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가 몹시 고파 꼬르륵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그 쇠기둥을 붙잡고 버티었다.

그때였다. 아무런 대화없이 내 어깨를 툭 건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마침 잡상인이 버스간에서 팔고 있었던 ‘당고’를 내게 권했다. 당고는 팥고물을 완자처럼 만든 떡의 일종. 나는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당고를 받아 들고 맛있게 먹었다.

얼핏 본 그녀는 얼굴이 매우 예쁘고 하얀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많았던 나는 그 여학생에게 단 한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버스는 떠났고 그녀는 상주와 칠곡 사이의 한 마을에서 내렸다.

주소라도 물어서 알아두었어야 했을 사람이었다. 그뒤 나는 안동 부근을 오갈때마다 혹시 그녀를 보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40년이 넘게 흘러간 지금까지 결코 그녀와 그때 일을 잊은 적이 없다.

/김주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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