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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현장에서 / 정책은 없고 '아줌마'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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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현장에서 / 정책은 없고 '아줌마'들만

입력
2000.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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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어도 날씨가 쌀쌀하다. 오후 2시부터 서울 백석초등학교에서 시작된서울 강서을 합동연설회에 1시30분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한나라당 이신범후보와 민주당 김성호후보, 자민련 이경표후보측 운동원들이 미리부터 세과시를 하듯 후보사진을 큼지막하게 인쇄한 피켓을 들고 무리지어 인사를 한다. 청년진보당의 양부현후보측은 단 하나의 피켓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의 다른 선거구에 입후보한 동료후보 한 사람만 격려차 나왔다고 한다.동원되지 않은 청중은 아직 올 시간이 아니어서 인지 운동장 안은 썰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가 흔히 무관심층을 대별할 때 주부의 또다른 이름 ‘아줌마’들도 그 앞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연설회장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의 정치무관심층은 아줌마들이 아니라 아저씨들이다. 연설회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어디서 그렇게 몰려온 것인지, 그리고 어느 후보측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정말 많고도 많은 아줌마들이 피켓을 들거나 피켓부대의 뒤를 따라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외치며 그야말로 세경쟁을 하듯 밀물처럼 밀려 들어온다.

선거때만 되면 이 땅의 아줌마들은 오랜 기간의 정치무관심에서 깨어나 어느 날 갑자기 최고의 정치관심층으로 부상한다. 어쩌다 4년만이거나 5년마다 한 번씩 저들의 정치관심을 반짝 일깨우는 것 역시 선거기간에 이렇게 저렇게 얻어 먹는 밥 몇 끼와 또 이렇게 저렇게 뒤로 건네 받는 몇 푼의 쥐약값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동원된 청중 뒤로 50명쯤 되는 자발적 청중이 입석표를 끊고 들어온 관객처럼 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다.

연설 추첨순서에 따라 첫번째로 연단에 오른 자민련 이경표후보는 자신이 이 지역에서 25년간 살아온 토박이로 12대때부터 출마하여 지금까지 네 번 낙선했지만, 지역을 위해 일할 준비는 다 되었다고 기염을 토한다. 평소에도 그랬던 것처럼 유세전에서도 대통령과 그 일가에 대해 무얼 하나 새로운 걸 폭로하지 않나 은근히(?) 기대했던 이신범후보 역시 새로운 것보다는 이제까지의 것들을 재탕 삼탕하며 청와대를 공격했다. 유일한 여성후보이며 20대 후보인 양부현후보는 며칠 전 공권력과의 마찰로 불상사까지 발생한 태평로 거리유세 무산을 예로 들며 민중의 진정한 봄을 말하고, 신문기자 출신의 김성호후보는 자신이 특종보도했던 김현철씨의 국정농단의 예를 들어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후보의 폭로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그런 건 관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재미가 없다. 언제나 재미있는 것은 장외에 있는 법. 그 자리에서 주워 들은 몇 마디.

“그래, 이 참에 아예 다섯 번(낙선) 채워주마.” “우리쪽 끝나거든 사람들 싹 데리고 나가. 알았지?” “보기는 귀엽네(양부현후보 연설때).” “어떤 놈이 올라가 대신 뽑은 거야?(연설순서) 나 빨리 가서 애들 챙겨줘야 하는데.” “여기 오면 좀 낫나 했더니 괜히 왔어.”(커피아줌마)

후보들 간에 엇비슷하게 내놓은 지역구 공약에 대해 서로 자기만이 할 수 있다는 경쟁은 있었으나 진정한 정책대결도 없는 자리였다. 동원된 청중만 박수치고, 고함지르고, 상대후보에 대해 야유하며 밥값을 하느라 애쓰는 하루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게 바로 현장에서 본 우리의 선거문화인 걸 어떻게 하겠는가. 밥이 뜨거운 만큼만 열기가 뜨거운 걸.

이순원 / 한국일보 총선보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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