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대표적으로 상징해온 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대한 개정 요구가 뜨겁다. 이달 말 재개되는 SOFA 개정협상을 앞두고 주한 미군범죄관련 시민단체들은 되풀이 되는 미군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불평등 조항들이 전면적으로 손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SOFA의 문제점, 협상의 쟁점과 전망, 미군범죄의 실태 등을 점검해 본다. /편집자주1967년 체결된 SOFA는 끊이지 않는 미군범죄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면서 91년 부분 개정됐다. 하지만 일본 유럽국가들이 미국과 맺은 협정에 비해 주권국가로서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조항들이 여전히 고쳐지지 않아 미군범죄 발생때마다 분쟁의 불씨가 돼왔다.
한국과 미국은 95년 충무로 미군병사 성추행사건을 계기로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지만 7차례 입씨름만 주고받다 96년 11월 미국측의 일방적인 결렬통보로 아무 결실없이 끝나고 말았다.
현재 시민단체들이 가장 독소 조항으로 꼽고 있는 것은 우리 정부의 미군 구금권의 제한. 현행 협정은 미군이 살인·강간 등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라도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미군당국이 계속 구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사법당국의 미군에 대한 구속수사가 불가능해 초동수사와 증거수집에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다.
한국외국어대 이장희(李長熙·법학)교수는“중범죄는 기소전에도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는 일본의 경우와 비교하면 이 협정이 얼마나 불평등한 지 알 수 있다”며“이 조항은 최소한 미일협정 수준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형이 확정돼 복역중이라도 미국이 신병인도를 요청하면 우리 정부가 ‘호의적인 고려’를 하도록 한 규정과 1심에서 무죄가 났을 경우 검사가 항소할 수 없도록 한 규정도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무중에 발생한 사건을 우리 재판권행사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공무에 대한 판단을 미군 장성급이 하도록 한 규정도 자의적 운용의 소지를 안고 있어 개정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오진아(吳珍娥·여)간사는“미군들이 이같은 불평등한 조항을 악용, 쉽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측면이 많다”며 불평등 조항이 개선되지 않는 한 미군범죄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형사관할권 문제외에도 미군기지내의 한국인 노무자가 한국법이 허용하는 노동3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나 통관관세및 조세상의 지나친 특혜부여로 한국의 시장질서가 교란되는 문제, 협정해석때 영어본을 우선하는 문제, 미군 시설과 구역에 대한 환경조사권이 없다는 문제 등도 개선돼야 할 사항으로 지적된다.
김승일기자
ksi8101@hk.co.kr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포커스] SOFA 쟁점·협상전망은
한국과 미국이 96년11월 이후 중단된 SOFA 개정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지만 협상이 순탄하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인 조항의 해석뿐아니라 개정의 필요성과 범위, 양국 사법체계와 관습 등 여러 면에서 양측이 심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측은 현행 SOFA에 불평등한 요소가 많다는 인식하에 “예방차원에서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미국측은 한국측에 일방적으로 불평등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아래 “잘 운영되고 있는데 고칠 필요가 있느냐”며 개정 자체에 소극적이다.
협상 범위에서도 우리측은 형사재판 관할권 노무 환경 검역 등 전반적 분야를 다루자고 요구해온 반면 미국은 형사재판 관할권 문제 등 최소한의 개정만을 상정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는 SOFA 개정협상이 너무 포괄적으로 진행될 경우 긴시일이 걸리는데다 타협점도 찾기 어렵다고 보고 타결가능한 의제부터 우선 협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시민단체들의 전면개정 요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고심하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미군범죄자의 인도시기 조항과 관련, 미국측은 일본처럼 기소시점에서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그 대가로 대질신문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소재불명 등 이유로 참고인이나 증인이 법정에 2차례 이상 출석하지 않을 경우 법관의 판단에 따라 검찰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 우리의 형사소송법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는 이를 인정할 경우 국내 범죄자 처리와 형평이 맞지 않고 국내법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또 미국은 “일본은 6개월 이하의 징역형이 예상되는 범죄의 경우는 관할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며“거의 모든 범죄에 대한 재판권 행사 범위를 일본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측은 “협정은 미국이 요청하면 재판권 행사를 포기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며 “미국의 관할권축소 주장은 신병인도 시기에 우리의 개정요구를 비껴가기 위한 의도”라고 맞서고 있다.
재판권 행사율에 대해서도 시민단체들은 91년이후 전체사건의 3.5%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측은 단순 교통사고나 폭행사건을 제외하면 한국측의 재판권 행사율은 전체사건의 20%정도에 이른다고 반박하고 있다.
무엇보다 협상 타결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SOFA의 자체에 대한 인식의 차이. 현행 SOFA가 한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낯선 땅에 파견된 자국군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보는 미국측과 미군이 과거의 시혜적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우월적인 지위를 누리려 한다는 한국측 사이의 시각차가 SOFA 개정 협상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김승일기자
ksi8101@hk.co.kr
■[포커스] 미군·지자체 갈등심화
미군 부대내의 건물 무단 증·개축, 미군 소속차량의 불법 주·정차 과태료 미납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군측과 지방자치단체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미8군 사령부 관할 구청인 서울 용산구는 지난달 23일 한미 친선협의회에서 미군 소속차량의 불법 주·정차 과태료 상습체납 문제를 지적하며 앞으로는 견인 등 강경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용산구는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군 소속차량의 불법 주·정차 9,540건을 적발, 3억8,588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지만 미군측의 납부실적은 386건 1,588만원이 고작.
미군측은 SOFA 제14조 ‘미 합중국 군대 구성원 및 군속의 재산에 대해 각종 조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조항을 들어 미납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과태료 부과는 법규 위반에 대한 행정조치로 조세가 아니므로 미군측 논리는 억지라는 것이 구청측의 설명이다.
용산구는 또 미8군이 용산기지 ‘드래곤 힐 랏지’옆에 짓고 있는 지하1층 지상6층짜리 별관과 지하1층 지상1층짜리 주차장을 구청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불법 건축물로 규정, 자진철거하지 않을 경우 강제철거하겠다고 밝혔었다.
외교통상부가 최근“SOFA 규정상 용산구와 협의할 법적 의무는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려 구의 강제철거 방침에 일단 제동이 걸렸지만 구측은 기지내 호텔신축을 SOFA규정이 악용된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어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경기 의정부시, 강원 춘천·원주시는 상·하수도 요금을 둘러싸고 미군부대측과 체납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자치단체들이 “미군 영내의 수돗물 요금을 한국내 가정용과 같은 최저수준으로 해달라”는 미군측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미군측이 요금납부를 거부, 마찰이 이어지고 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포커스] 살인·강도등 연평균 603건
2월 1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외국인 전용클럽에서 업소 여종업원 김모(32)씨가 입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주인이 발견,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경찰과 미군범죄수사대(CID)가 목격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이틀만에 검거한 범인은 경기 파주시 미8군 47기갑대대 소속 크리스토퍼 매카시(22)상병. 매카시상병은 술에 취해 변태 성행위를 거절하는 김씨를 목졸라 살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지난달 11일에는 경기 의정부시에서 미군을 상대로 윤락영업을 해온 서모(62씨가 자신의 집에서 피살된 채 발견돼 조사가 진행중이다.
1992년 경기 동두천시에서 발생했던 윤금이씨 피살사건이후 미군에 의한 기지촌 주민 살해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96년부터 매년 1건씩 발생하더니 지난해 2건, 올해엔 벌써 2건이 발생했다.
법무부 집계에 따르면 92년이후 주한미군 범죄는 연평균 603건에 이른다. 지난해 주한미군이 저지른 살인 강도 절도 등 강력범죄만도 살인사건 1건을 포함, 175건으로 98년 138건에 비해 27%나 증가했다.
하지만 우리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한 경우는 연평균 21건으로 전체사건의 3.5%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우리 수사당국의 미군 피의자에 대한 자유로운 조사가 보장되지 않아 수사와 증거수집에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다. 지난해 1, 9월 발생했던 신모(42), 이모(49)씨 살인사건은 현재까지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
매카시 상병의 경우도 우리 경찰은 조사가 필요할 때마다 미군 구금시설에 있는 그를 불러 미군측 관계자의 입회하에 신문한 뒤 다시 미군 영내로 돌려보내야 했다./정녹영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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