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수전하람
김성한의 소설 바비도에 나오는 주인공 바비도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그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킨 것이다. 이러한 바비도의 행위는 오늘의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소설 속의 사회적 배경은 중세의 영국으로 밖으로는 백년전쟁이, 안으로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있는 극도로 혼란한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는 악행이 난무하고 불의가 만연하게 되어 정의의 원칙은 지켜지기 어렵다. 그러나 평범한 재봉 직공 중 하나에 불과했던 바비도는 정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끝내 지켜내면서 불의에 저항하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바비도의 행동은 여러 사람들에게 정의사회의 도래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오늘날의 사회는 중세의 종교개혁, 전쟁과 같은 표면적인 혼란은 존재하지 않지만, 사회 내부에서는 여전히 불의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 한가지 예로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정치를 하는 정치가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이 이러한 불의의 세태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적당히 불의와 타협하는 모습에 있다. 만일 우리들이 이런 안일한 태도를 계속 보인다면 사회의 불의는 없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팽배해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바비도’의 사회보다도 더욱 부패한 사회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해내기 위해서 현실의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는 자세부터 버려야 한다. 그리고 소설 속의 바비도와 같이 정의에 대한 뚜렷하고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불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맞서는 자세를 항상 지녀야 할 것이다.
소설 ‘바비도’에서의 사회는 혼란하고 부패하여 정의가 거의 사라져 가던 사회였다. 그런 사회에서 바비도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어둠 속의 등불과도 같았다. 그러한 바비도의 행동은 결국 정의에 대한 굳은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개개인 모두가 굳은 신념을 가진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사회는 자연스럽게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우수1
허소영
소설 ‘바비도’는 밖으로는 백년전쟁, 안으로는 종교개혁을 겪고 있던 15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종교적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내 죽음을 택했던 한 평범한 재봉 직공의 이야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세속 왕권이 확립되어 감에 따라 불안을 느꼈기에 더욱 횡행하던 중세 교회권력의 독선과 억압을 통해 작가는 혼란스러웠던 50년대 한국 사회에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관 중심의 정경활동에서 벗어나, 국민 주도의 새로운 경쟁 체제 정비와 정치 구조의 개혁 등이 요구되는 오늘날의 사회 현실에서 ‘바비도’의 선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어느 시대, 사회를 막론하고 모순은 존재하며, 이는 기존의 권력을 고수하고자 하는 계층과 새로운 권리를 획득하고자 하는 계층 사이의 갈등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사회의 갈등은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변화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체제 성립과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권력에 대응, 정의와 양심을 수호하는 적극적인 인간형이 필요하다. 더욱이 오늘날과 같이 개인에게 일방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사회가 존재한다면, 인간의 집단적 노력이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개인이 이러한 사회를 자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바비도’는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면, 목숨마저 허락지 않는 폭압적 체제 속에서 신념을 위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우리에게 고결한 인간상을 제시한다. 그 도덕성의 본질은 용기이며, 이러한 용기야말로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구현하는 원천일 것이다.
현대 사회는 지식인을 요구한다. 추상적인 이론 탐구와 서양 학문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이전의 지식인이 아니라, 현실에 필요한 통찰력과 비판 의식을 갖고, 사회에 참여하는 시민으로서의 지식인이 그것이다. 사회, 즉 권력에 대한 비판은 용기의 표출이며, 이는 사회 문제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사회변동이 급속해짐에 따라 가치 기준마저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는 요즈음, 소설 속 ‘바비도’는 역사를 초월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신념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부정과 비리로 가득했던 우리 사회의 개혁 역시 소극적이고 순응적인 인간상을 배제하고, 인간 폐업을 선언했던 ‘바비도’처럼 정의와 양심 구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행동적 인간상이 연구될 것이다. 소설 ‘바비도’는 현대 사회와 현대인들을 비추는 유용한 거울이라 할 수 있겠다.
■우수2
오유원
김성한의 소설 ‘바비도’에서 우리는 1950년대의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엿볼 수 있다. 혼란스런 시대상황 속에 권력과 권위에 아첨을 하여 양심을 속인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바비도를 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약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사회에 아직도 만연하는 권력과 양심의 대립에 바비도의 선택이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오랜 권위주의적 통치와 관료제 등의 체제에서 권력과 타협해 왔다. 좀 더 편한 삶을 위해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정의와 양심은 실존하지 않는 허구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양심에 따라 사는 것’은 ‘손해보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시문의 바비도의 선택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제시문의 장면은 바비도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여 결국 죽음을 택하는 장면이다. 즉, 바비도는 불의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적 인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권력의 부패와 독선이 판을 치는 우리 사회에 도덕적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신념이 옳다면 어떠한 외적인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신념대로 행하는 의지가 우리에겐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양심에 의한 행동을 고수한다면, 권력의 부패로 물들은 우리의 현실도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민주사회이다. 그 어느 시기보다도 권력에 굴하지 않는 자율적이고 양심적인 의식이 필요한 때이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권위주의적 정치와 이에 타협해 온 불의를 타파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민주사회는 형성된다. 물론 외적인 억압에 대항하는 양심적 자세를 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권력에 대한 양심적 행위에는 희생이나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올바른 신념대로 행한다면 그 대가는 정의로운 사회구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새로운 천년, 우리사회의 정의와 바람직한 민주사회 풍토를 위해 우리는 다시 한번 바비도의 선택이 주는 교훈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논술강평] 논제의 핵심에 접근 간결한 문장 돋보여
이번주 제시문은 김성한의 소설 ‘바비도’에서 뽑은 것이다. 이 제시문을 읽고, 바비도의 선택이 주는 교훈을 오늘날의 사회현실과 연관지어 논술하는 것이 이번주 주제이다. 바비도는 진실을 추구하며 살다가 양심에 따라 죽음을 선택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주 주제는 어떠한 자세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로 집약될 수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15세기이고, 사건의 공간적 배경은 영국이다. 김성한이 이 작품을 발표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가량 전인 1950년대이다. 이런 외형적 조건들을 놓고 볼 때, 이 작품이 과연 오늘날 우리 현실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름대로 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이런 유형의 작품을 우리는 고전에 속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이란 단순히 오래된 작품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고전이란 오래 전 사람들의 삶과 오래 전의 세상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오늘날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어떻게 해서 그것이 가능한가? 이는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그리고 지켜져야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고전은 바로 그러한 것들을 주된 대상으로 다룬다. 그러나 고전으로 분류되는 작품의 대부분은 특정한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직설적으로 설파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을 이른바 소설적 기법에 의존해 우회적 수법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우회적 수법 가운데 하나가 상징이다. 따라서 작품에 숨겨진 상징을 이해하는 일은 고전의 핵심에 다가서는 일이 된다. 바비도에서도 상징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상징은 부분을 보여주고 전체를 유추하도록 하거나, 여럿 가운데 하나를 보여주고 나머지를 상상하도록 이끄는 수법이다. 빙산의 일부를 그려 물속에 더 큰 얼음덩이가 있음을 알리거나, 새로 피어난 꽃 한 송이를 묘사해 봄이 왔음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읽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힘이 바로 고전을 바르게 이해하는 힘이다.
이번주 최우수작으로는 전하람(부천고)의 글을, 우수작으로는 허소영(안동여고)과 오유원(명덕외고)의 글을 뽑는다. 전하람의 글은 제시문에 대한 충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논제의 핵심에 다가선 글이다. 제시문의 주제에 대한 이해도 분명하고, 그 주제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한 자각도 분명하다. 정의에 대한 굳은 신념이 바비도의 선택을 가져왔고, 그러한 신념이 지켜질 때 우리에게도 바람직한 사회가 보장될 수 있다는 전망의 제시 역시 주목할 만하다. 간결한 문장으로 선명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것 역시 이 글이 지닌 장점이다.
허소영과 오유원의 글도 논제를 잘 다루고 있다. 도덕성의 본질이 용기이며, 이러한 용기야말로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구현하는 원천이 된다는 허소영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단, 허소영의 글에는 부분적으로 긴 문장들이 섞여있다. 특히 서두가 그러한데, 서두의 문장이 길면 읽는 이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되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오유원의 경우는 논지 전달은 잘 되는 편이지만, 중반 이후 내용이 중복된다. ‘양심’의 문제에 대한 서술이 그러하다.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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