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이란 이런 것이다. 역사와 인간을 들여다볼 줄 아는 눈. 그것을 영상언어로 노련하고 강렬하게 표현할 줄 아는 지혜. 치밀한 계획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가장 적합한 언어를 골라 그 결을 살린다면 어떤 언어도 영화 속에서 빛을 발한다.춤은 언어이다. 육체의 움직임은 하나의 기호다. 그 기호는 단순히 표피가 아니다. 때론 숨죽이며, 때론 격정적인 춤사위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담아내고, 그것이 모이고 흩어지고 하면서 역사와 현실을 뚫고 지나간다. 춤영화는 많았다. 그 중 탱고를 선택한 것도 수두룩하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사우라(68) 감독만 해도 ‘피의 결혼식’ ‘카르멘’ ‘플라멩코’로 춤영화 행진을 했다. 그런 그가 마침내 탱고로 사랑과 이별, 고뇌와 분노, 역사와 사회를 담으면서 그 어떤 언어보다 분명하게,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유능한 안무가가 됐다.
완성된 시나리오 없이 그가 완성한 ‘탱고’는 마치 뮤지컬을 준비하는 듯한 장면의 나열처럼 보인다. 뮤지컬의 연습장면과 현실, 영화 속 감독의 환상이 서로 뒤섞여 서술적 진행을 흐트린다. 단순히 탱고를 추는 아내(세실리아 나로바)에게 버림받은 감독 마리오(미구엘 앙헬 솔라)와 제작비를 댄 마피아 두목의 추천으로 새 무용수로 들어온 애인 엘레나(미아 마에스트로)의 사랑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탱고가 가진 선정적 몸놀림에 집착하는 듯하다.
그러나 사우라 감독은 갖가지 원색의 조명, 흑백의 대비, 사각의 무대와 실루엣이 주는 갖가지 이미지와 언어들로 탱고의 고향인 아르헨티나의 가난한 이민자들의 삶, 납치와 고문과 살인으로 얼룩진 군부독재의 참상을 담아냈다.
어떤 다큐멘터리나 영화적 장치보다 강렬하다. 인간의 태초의 언어인 춤의 힘힘을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 틀을 깬 사우라 감독의 실험성 덕분이다.
판소리를 영상에 접목시킨 임권택 감독이 생각난다. 그의 나이 예순 넷이다. 그도 사우라처럼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 ‘춘향뎐’의 흥행이 저조했다고, 그가 일구어낸 성과까지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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